별러왔던 관세 폭탄 현실로 멕시코, 캐나다까지 25% 부과
그러나 이민·마약 문제 해결에 협조하면 완화될 가능성 높아
선명한 무역·안보 연계 정책은 오히려 유연한 대응 여지 많아
그러나 이민·마약 문제 해결에 협조하면 완화될 가능성 높아
선명한 무역·안보 연계 정책은 오히려 유연한 대응 여지 많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입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 10년 사이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무역 분야가 특히 그렇다. 후보 시절부터 그는 무역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별러왔다.
지난주에는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누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최대 25%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기존 관세에 10%를 추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불법 이민자의, 중국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원료 물질의 최대 공급처임에도 단속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역시 트럼프답다.
각국은 관세와 수입 쿼터 등 다양한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같은 값이면 관세화 조치를 선호한다. 수입품의 가격이나 수량을 과세표준으로 부과되는 관세는 투명성이 높아 보호의 정도와 수준을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인 수입 쿼터는 파급 효과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관세를 선호한다. 수입품의 소비자가격 상승에 따라 생기는 초과이윤인 할당지대(quota rent)가 수입허가 자격을 얻은 이들에게 돌아가는 쿼터와 달리 관세는 국고로 귀속돼 세수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새로운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처음으로 세계 상품무역이 둔화됐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점진적 회복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우호국과 비우호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예고된 트럼프의 공격적 무역정책 때문에 세계 무역질서가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국제 자유무역 질서를 와해하려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핵심 참모 중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처럼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부정하는 인물도 있지만, 전후 자유무역 질서가 붕괴되면 미국 역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서는 판을 깨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게 최선이다.
트럼프의 엄포와 압박 뒤에 드러날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1기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국가안보’ 조항을 근거로 철강(25%)과 알루미늄(10%)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자동차와 부품 수입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도 상당히 진행됐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제 관세 부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역시 232조를 근거로 관세 부과 조치를 정당화할 것이다. 다만 관세의 파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관세가 부과되면 외국 수출기업은 미국 내 현지 생산이나 제3국 우회 생산을 통한 상쇄 전략을 펼 것이다. 수입물가 상승으로 미국 내 기업과 가계의 불만도 거세진다. 상대국의 보복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주요 교역국에 예고된 관세 폭탄은 불법 이민자, 마약, 무역수지 적자 등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상대국이 협조한다면 철회 또는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는 오히려 색깔이 분명한 트럼프의 무역·안보 연계 정책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 우리 철강업계는 25% 추가 관세 부과를 면제받는 대신 직전 3년 평균 수출량의 70%로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수출 자율규제 방식으로 대응해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무역을 매개로 경성 안보 이슈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자나 마약 같은 연성 안보 이슈 해결에 진심인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환경과 인권을 명분으로 공격적 무역정책을 추진한 바이든 행정부나 유럽연합(EU)의 방식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EU를 탈퇴한 영국과 난민 문제로 씨름하는 EU의 사례가 보여주듯 어느 국가도 과도한 ‘자연인의 이동’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무역·안보 연계 이슈 분야에서 ‘기승전 중국’인 시대에 중국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나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그저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다. 중국이 주변국에 대한 군사 위협을 서슴지 않는 점, 국제사회 마약 문제의 상당한 원인 제공국임에도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점 등을 미뤄 볼 때 우리도 트럼프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