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활주로에서부터 눈 덮인 도시가 보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임에도 새하얀 풍경 때문에 낯선 곳에 온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11월의 첫눈이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눈 내리는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내 시선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유리창 위에 붙은 로밍 광고 때문에 바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운전석 쪽 창문으로 볼 수 있을까 하여 앞좌석 너머 정면 창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텔레비전 광고가 상영 중이었다. 오랜만의 귀향길, 버스에 앉아 내가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광고밖에 없었던 셈이다.
눈과 귀가 몹시 피로했다. 귀는 이어폰으로 대충 막아둘 수 있었지만 시각적 공해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귀뿐 아니라 눈으로도 시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광고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이며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에서 내가 머물렀던 동네에는 길을 걷는 동안 광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공원과 하늘, 행인과 간판 정도가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풍경의 전부였다. 세계는 눈앞에 열려 있었고 나에게 무엇을 주입하려 하지 않았다. 광고는 끝없이 우리에게 결핍을 상기시킨다. 당신의 현재에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무언가를 사라고 외친다. 그 소리는 우리의 눈에 새겨지고 귓가에 맴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광고를 자연의 일부처럼 당연하게 느꼈다. 자각하지 못했던 피로를 서울을 떠나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
공항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한적한 도로에서조차 창밖 풍경보다 광고를 보도록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어찌 피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생활에 주어져 있는 무위의 자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중립적인 풍경이 너무나 적다는 생각이다. 도시에서 눈을 뜨고 살아가는 이상 끝없이 주어지는 이 피로를 덜기 위해 쉬는 날이면 우리가 강으로 산으로 떠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