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서명한 행정명령은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기였다. 이후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고 이란핵협정을 파기하는 등 전임 대통령 오바마의 유산 지우기에 열을 올렸다. 그런 트럼프가 오바마를 따라하려는 게 있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이었다. 오바마가 취임 첫해 거머쥔 그 상만큼은 부러웠던 게 분명하다.
트럼프는 2018년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노벨평화상을 기대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는데, 미국 정부의 비공식적인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이듬해 노벨평화상이 에티오피아의 총리 아비 아머드에게 돌아가자 트럼프는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전쟁을 종결시킨 아머드의 공적보다 더 큰 전쟁 몇 개를 막은 자신의 역할이 더 주목받아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트럼프는 2021년에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됐다. 재임 중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화협정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노르웨이의 한 극우 정치인이 그를 추천했다. 트럼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한 두 국가론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러나 트럼프가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를 대사로 임명하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부추기는 이중적인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메레즈코 의원이 2025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트럼프를 추천하는 서한을 노벨위원회에 보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시사한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려는 제스처라는 해석이 많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에 집착한다는 건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