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4개월여의 경찰 수사에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 8월 인천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총 세 차례 합동감식을 거쳐 배터리 관리시스템(BMS)과 배터리팩을 수거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이후 국과수는 차량 하부에 장착된 배터리팩 내부의 절연 파괴(절연체가 특성을 잃는 현상) 과정에서 일어난 전기적 발열에 의한 발화 가능성과 외부 충격에 의한 배터리팩 밑면의 손상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다.
관련 전문가 16명의 자문에서도 배터리팩 손상 가능성 등만 언급하는 수준의 의견이 나왔다. 배터리의 전류, 전압, 온도 등을 측정하는 장치로 화재 원인 규명의 열쇠가 될 것으로 봤던 BMS가 손상돼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이 난 전기차의 보험·정비·운행 이력 등에서도 화재 원인으로 볼 만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스프링클러를 끄는 등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인명·재산 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과실치상)로 불구속 입건한 관리사무소 직원 A씨 등 4명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당시 화재가 8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입주민 등 23명은 연기 흡입, 어지럼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리는 등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화재 원인 규명이 불발로 끝나면서 아파트 입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여전히 피해 복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전체 1581가구 중 약 400가구는 난방과 온수도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월 2~3건씩 이뤄지던 매매거래도 끊겼다. 입주민 A씨는 “화재 원인이 벤츠 전기차에 있다는 게 분명한데도 모든 보상 책임에서 벤츠가 쏙 빠져나갈 것 같아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으면서 보험사들이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도 모호해졌다. 화재로 피해를 본 차주들은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가 있는 경우 각 자동차보험사에서 먼저 보상을 받은 상태다. 보험사들은 이로 인한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책임 주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었다.
보험사들은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수사 결과 등을 고려해 집단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아파트 측에 관리 책임을 묻거나 벤츠·배터리 제조사에 제품 결함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 차량의 보험사가 불이 난 차량의 보험사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운전자 과실을 인정받아야 한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화재로 많은 주민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주민들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피해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가능한 한 신속하게 합당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김민 기자, 문수정 구정하 기자 ki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