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크라 문제 당분간 비공개”… 젤렌스키 “서울협상 기대”

입력 2024-11-29 00:4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 리셉션 행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과의 협력을 적극 모색하라”는 특명을 받은 우크라이나 특별사절단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간 뒤 양국 정부는 미묘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의제는 분명했다”며 “서울에서의 ‘협상’에 대한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의 보고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실효적 대응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무기 지원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우크라이나 특사단의 요구사항 및 우리 측 반응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문제는 당분간 비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확인한 직후 ‘단계적 조치’를 강하게 시사했던 기존 태도와 차이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두 차례 공개적으로 말했다. 대통령실은 특사단 방문이 임박한 시점에도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보충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고심하는 한국 정부와 달리 우크라이나 측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특사단의 용산 대통령실 방문 직후 화상 연설을 통해 “의제는 우리 지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로 명확했다”며 무기 관련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포탄뿐 아니라 군인들까지 러시아로 옮겨진 상황임을 강조하며 “전쟁은 세계화됐고, 세계적으로만 멈춰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국의 도움을 호소하는 맥락으로 읽힌다.

한국 정부가 무기 지원 신중론으로 선회한 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를 고려해야 하는 외교적 현실이 들어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한·미동맹 관계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시각은 판이하다. 이에 정부는 국익 외교를 염두에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미 시작한 상태다.

미국이 에이태큼스(ATACMS)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 최근 사례가 단적인 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사실을 한국 측에 사전 통보했는데, 이때 한국 정부는 “우리나라가 직접 이 문제에 가담해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직후 트럼프 당선인 진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확전 행위라는 비난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역시 한국의 여론 지형을 의식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안드리 니콜라옌코 우크라이나 의원은 최근 언론을 통해 “한국 의회에서 주요 위원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만 무기 이전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이후에도 한국인들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직접적 무기 공급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