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인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의 위기론이 현실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배터리 기업들이 적자생존의 길에 들어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가면서 향후 수년간 기업들의 고군분투 속에 시장 재편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유럽 최대 배터리 셀 제조사로 꼽히는 노스볼트는 지난 21일 미국 법원에 챕터11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챕터11은 기업이 영업을 이어가며 채무를 조정하게끔 해주는 보호 절차다. 한국으로 치면 회생 절차에 가깝다. 이에 따라 노스볼트 최대 주주인 폭스바겐그룹은 보유 지분 21% 중 대부분을 상각(회계상 손실 처리)했다. 폭스바겐그룹은 노스볼트에 지난 2019년 9억 유로(1조3240억원), 지난해 5억 유로(7355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노스볼트 지분 19.2%를 보유한 골드만삭스 역시 지난 23일 보유 지분을 전액 상각했다. 골드만삭스는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노스볼트가 파산하게 된 배경에는 수요 감소와 낮은 수율이 자리 잡고 있다. 노스볼트는 지난 6월 품질 문제를 겪으면서 BMW와 맺었던 2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 지난 10월에는 스웨덴 셸레프테오 공장을 증설한다며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수요가 없어 실패했다. 생산 수율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셸레프테오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16GWh인데, 지난해 실제 출하량은 그 중 0.5%인 80MWh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노스볼트의 파산이 배터리 업계의 적자생존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150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으면서 유럽에서 가장 자금력이 탄탄한 배터리 기업인 노스볼트마저 존폐 기로에 설 만큼 전반적으로 업황 침체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쪼그라든 실적을 버틸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항마가 하나씩 사라지면 사실상 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외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국책 과제로 배터리 업체들에 수천억원씩 지원금을 주는 반면 한국은 세액공제 혜택 외에는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