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복음으로 용서하고 연합하는 공동체

입력 2024-12-02 03:06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거쳐 가이사랴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바울은 집사 빌립을 찾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에서 가이사랴에 들러 빌립 집사를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단순히 휴식처를 찾기 위해 빌립의 집을 찾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지지했던 바울이 이제 그 동료였던 빌립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은 결코 평범한 만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마지막 여정에 빌립 집사를 방문했을까요.

빌립에게 스데반은 동료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로 임명돼 구제와 봉사 사역을 함께 감당하며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의 지혜와 담대한 믿음을 존경했습니다. 스데반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컸고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빌립은 그와 함께 일하며 깊은 영적 자극을 받았고 스데반의 열정은 빌립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스데반이 순교했을 때 빌립은 큰 상실감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동료이자 형제였던 스데반이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빌립은 그의 죽음 앞에서 깊은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그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초대교회에 닥친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당시 사울(훗날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며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에게 불편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빌립의 마음에 남아 있던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감정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빌립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바울을 용서하며 그와 함께 복음 안에서 연합하게 됩니다.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와 화해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빌립과 바울의 만남은 초대 교회가 복음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연합하는 공동체임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러 갈등이 존재합니다. 세대 간의 차이, 정치적 대립, 경제적 불평등이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로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빌립이 바울을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처럼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가 되게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답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동료 여러분,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을 때 그 안에서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입니다.

빌립이 복음 안에서 바울과 연합했던 그 은혜가 우리 사회에도 넘쳐 흘러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연합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상처를 녹이며 화해와 치유의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상혁 사관(청주 구세군운천교회)

◇이상혁 사관은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2007년에 임관해 현재 충북 청주 흥덕구의 구세군운천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 다니엘지역아동센터와 기초푸드뱅크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음세대와 어려운 300가정을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