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 중 하나는 군대 이야기입니다. 그 중심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군대는 나이 학벌 지역을 막론하고 계급에 의해 서열이 나뉩니다. 많은 이야기의 끝은 비슷합니다. “나는 폭언과 구타를 당했지만 선임이 되고 나선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폭언과 구타를 일삼던 선임은 대체 누구일까요. 그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아마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선임이었을 겁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웃지 못할 진실입니다.
요즘 저는 신학대학교를 다니며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1000여명 중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사랑을 꼽았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사랑임에도 교회 안에는 사랑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누가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요’ 설문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사랑을 실천했다면 사랑이 부족하다는 설문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사랑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왜 사랑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저는 피해 의식을 그 원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사랑하다가 받은 상처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반가운 인사가 어색한 무표정으로 돌아오고, 내가 나눈 이야기가 뒷말로 돌아오며, 공동체에서 짐을 졌더니 더 큰 짐이 돌아왔던 경험들. 이런 사랑에 대한 기대가 배신으로 바뀌는 경험이 쌓이며 우리는 사랑하기를 포기합니다. 머리로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 삶에서는 사랑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사랑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세상이 사랑하지 않기에 사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서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사랑으로 사신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이 이기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기에 끝까지 사랑할 이유를 찾습니다. 이 땅에서는 대가 없는 사랑이 미련하다고 손가락질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역전 골을 터뜨릴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나라는 결국 사랑으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진리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갑시다.
전인철 목사(그저교회)
◇그저교회(Just Church)는 별다를 것 없이 꾸준하게 성경이 말하는 교회됨을 고민하며 추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말씀을 읽는 토양 위에,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서로의 필요를 책임지기 위해 함께 세워가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