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일본 전통예술인 가면극 ‘노’(能)와 한국의 판소리, 정가 그리고 전통춤을 더한 작품이 12월 양국에서 잇따라 올라간다. 한국 국립국악원과 일본 아트리에 카슈가 공동제작한 ‘망한가’(望恨歌)로, 12월 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이어 12월 11~12일 도쿄의 노 전용극장인 텟센카이 노가쿠도에서 합동공연을 가진다.
‘망한가’는 1993년 일본에서 다다 도미오(1934~2010) 도쿄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대본으로 초연된 현대 노가쿠다. 고(故) 다다 교수는 1970년대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서프레서T세포’를 발견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의학자이자 문필가로 활동한 그는 노에 조예가 깊어서 직접 대본을 쓰기도 했다. 조선인의 일본 강제 징용을 소재로 한 ‘망한가’를 비롯해 일본에서 차별받아온 오키나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등 현대적인 주제를 다룬 10여편의 대본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망한가’는 1930년대 일본으로 강제 연행돼 규슈 탄광에서 노역하다 숨진 조선 청년의 아내를 다뤘다. 훗날 아내가 늙었을 때 남편이 생전에 보냈던 편지를 우여곡절 끝에 받은 뒤 슬퍼하는 이야기다. 다다 교수는 ‘망한가’를 창작할 때 백제가요 ‘정읍사’의 가사를 극 중 아내의 노랫말로 활용했다.
아트리에 카슈는 2019년 다다 교수 별세 9주기를 추모하며 ‘망한가’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한국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최악의 한일 관계였던 상황에서 공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이후 2020년과 2021년엔 또 다른 노 단체인 텐라이노가쿠회가 ‘망한가’를 무대에 올렸다. 텐라이노가쿠회는 한국의 농악팀을 초청해 작품 안에 넣어 화제를 모았다.
이번 한일 합작 공연은 기존 작품에 한국의 판소리와 정가, 전통춤을 더해 한국적인 색채를 강화했다. 연출가 가사이 겐이치를 비롯해 아내 역의 우자와 히사 등 9명의 일본 전통예술가들이 참여한다. 주연을 맡은 우자와 히사는 일본의 ‘인간국보’(한국의 인간문화재에 해당)인 중요무형문화재 노가쿠 보유자다. 한국에서는 국립국악원 연주단과 함께 재일교포 출신 전통음악가 민영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아내의 젊은 시절 역에는 이하경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이 출연한다. 한국 공연에서는 이지선 숙명여대 일본어과 교수가 사회자로 무대에 올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더할 예정이다.
본 공연에 앞서 시창 ‘추강이’와 시나위(즉흥무)로 한국적인 멋을 더하고, 공연이 끝나며 일본 노의 ‘마이바야시 샷쿄우’로 마무리한다. 마이바야시란 노 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공연이 끝난 뒤 노래와 춤으로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