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년 만에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를 재개하고 재정 투입을 포함한 반도체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주요국 간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집권으로 인한 불확실성까지 커지자 지원 수위를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정부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기도 성남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산경장을 개최하고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모여 국내 산업 지원 정책 등을 논의하는 산경장을 개최한 것은 2022년 12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이번 지원 방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인프라 조성에 대한 정부의 재정 투입 의지다. 정부는 향후 전력·용수 등 반도체 클러스터의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분담할 뜻을 내비쳤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급 비용 분담이 대표적이다. 우선 호남과 동해안에서 대규모 전력을 수송하는 공용망 송전선로 건설 비용은 한국전력이 부담한다. 공용망에서 클러스터로 이어지는 송전선로와 산단 내 변전소 건설에 필요한 총사업비 2조4000억원 중에서도 약 7000억원을 공공이 분담한다. 약 1조8000억원이 드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의 경우 국회 협의를 통해 정부가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분담할 방침이다.
이날 발표된 반도체 지원 방안에는 금융·세제 등 여타 분야에 대한 지원 확대도 담겼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팹리스, 제조 등 반도체 전 분야에 대해 내년에만 14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세제 지원의 경우 기존에 공제율이 낮은 일반 투자세액공제 대상이던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장비 투자에 대해서도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동안 직접 재정 지원에는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2년 만에 산경장을 재개하고 재정 투입을 공식화한 데는 격화하는 반도체 주요국 간 경쟁과 ‘트럼프 2기’의 정책 기조 전환으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미국 신정부 출범 후 보편관세 등 정책 기조가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게 된 비벡 라마스와미는 26일(현지시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따른 낭비적 보조금이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빠르게 집행되고 있다”면서 “이를 모두 재검토하고 감사관이 계약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산경장 재개를 기점으로 향후 국제적 산업 경쟁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향후 6개월이 우리 산업의 운명을 가르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