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정치경제대학(LSE)의 경제심리학과 교수이자 최연소 종신 교수인 저자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담대한 작업을 완성했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Theory of Everyone)’을 제시한다. 인간과 문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론 틀을 구축한 것이다. 그 속에는 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라는 네 가지 ‘삶의 법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책은) 에너지 혁신이 풍요로운 시기를 가져왔고 이는 인구 증가와 대규모 협력으로 이어졌으며 그럼에도 다시 결핍과 갈등이 도래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다시 풍요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류는 협력과 갈등 속에 혁신으로 에너지의 굴레를 돌파했다. 인간의 의도적 설계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탐색의 법칙, 즉 진화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른 모든 것의 토대이자 핵심은 에너지다. 인류의 성장과 발달의 한계는 에너지의 가용성이 결정짓는다. 지난 수천년 동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출생 시 기대 수명, 총인구 규모, 기타 발전 지표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평탄하게 유지되다 170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인 증가를 경험한다. 기점은 석탄에서 비롯된 산업혁명이었다. 이전까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에너지는 한계가 있었다. ‘에너지 천장’이 낮게 유지됐다는 의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지렛대나 도르래, 풍차 등 기계적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 수작업과 가축의 노동력을 합친 게 전부였다. 이를 통해 식량을 생산하고 나면 남는 에너지는 많지 않았다. 인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발견하고 사용법의 혁신을 이루면서 에너지 천장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렸다. 산업혁명과 함께 농업의 기계화와 비료·농약이 사용되면서 농업생산성은 큰 폭으로 향상됐다. 식량은 풍부해졌고 빈곤과 기근은 감소했다. 소득 수준은 높아지고 인구는 두 배 증가했다.
인구의 증가는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부는 소수에 집중돼 불평등은 심화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은 떨어진다. 저자는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가능성의 공간이 비례적으로 확장되지 않거나 혁신이 저하되거나 다음 에너지 단계로의 전환이 없으면 풍요는 결핍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어떤 혁신이나 협력도 에너지 법칙의 한계를 뚫을 수 없다는 얘기다.
다음 단계로의 에너지 전환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수백만년 동안 축적됐던 화석에너지는 불과 수백년 만에 소진되어 가고 있다. 화석 연료의 채굴, 가공, 사용 비용은 증가했다. 1919년만 해도 석유 1배럴의 에너지로 최소 1000배럴을 더 생산했지만 2010년에는 석유 1배럴로 겨우 5배럴을 생산한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 단계의 에너지로 핵융합을 주목한다.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원자력 발전이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 충돌로 일어나는 ‘핵분열’을 이용하는 반면, 핵융합 발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으로 바뀔 때 나오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원료가 사실상 무한에 가깝고 환경오염도 없다. 물론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에너지 천장을 다시 한번 밀어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핵융합에서 찾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 풍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혁신이 필요하지만 장애물도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는 양극화와 부패, 불평등이 인재와 기회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지고 필요한 창의적 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다소 급진적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비생산적인 자본에 대한 과세, 스타트업 도시 구축, 블록체인에 기반한 프로그래밍 가능한 정치 등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