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밋밋하고 따분한 현대건물은… “전 지구적 재앙”

입력 2024-11-29 04:06 수정 2024-11-29 04:06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밀라’의 사진을 펼쳐 보이고 있는 ‘더 인간적인 건축’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저자는 카사 밀라의 탁월함을 반복과 복잡성의 딱 알맞은 조합이라고 말했다. RHK 제공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도시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은 백 년도 넘은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바르셀로나를 방문한다. 대표적인 곳은 카사 밀라다. 16세대가 자리 잡은 9층짜리 건물은 곡선의 향연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저자는 “건물의 앞면은 빛 속에서 경이롭게 일렁이며 춤을 춘다”면서 “위로 아래로 안으로 밖으로, 건물 자체가 호흡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카사 밀라의 탁월함은 반복과 복잡성의 딱 알맞은 조합이다. 더 중요한 것은 카사 밀라가 행인에게 영감을 주고 손을 내밀고 미소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관대하고 인간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 대부분의 건물은 비인간적이다. 건물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건물 밖을 지나는 사람들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자는 현대 건물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바로 ‘따분하다’는 말이다. 따분함의 정체를 하나씩 살펴본다. 현대적인 건물의 정면은 믿기 힘들 정도로 평평하다. 창문과 문이 거의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는다. 지붕도 평평하다. 너무 평평한 건물은 고문 수준으로 따분하다. 또 대부분의 건물은 장식이 없고 밋밋하다. 밋밋하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적 건물의 디자인은 직사각형에 기초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에는 직선이나 직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부자연스럽다. 많은 건물의 외부는 유리로 만들어져 반짝인다. 반짝이면 우리의 감정을 반사해 무관심으로 마비되게 만든다. 저자는 “태초부터 우리가 만든 건물은 인간적으로 보였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면서 “별안간 믿기지 않는 속도로 따분함이 세계를 장악했다”고 말한다.

따분함은 따분함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따분한 건물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우리를 병들게 하며, 우리를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게 한다. 분열과 전쟁, 기후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면서 “전 지구적 재앙”이라고 주장하며 근거를 제시한다. 신경과학자 콜린 엘라드의 연구 결과, 따분한 장소 속 사람들은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졌다. 왜 그럴까. 복잡성보다 반복을 우선시하는 따분한 현대 풍경은 부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낮은 수준의 정보만 제공한다. 뇌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박탈당하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뇌는 경계 상태로 전환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것이다. 따분함을 느낄 때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한다. 수치가 오랜 기간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암, 당뇨, 뇌졸중, 심장병 등을 얻기 쉽다. 과학자들은 따분함이 과도하면 극단적인 정치적 신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따분한 건물은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분한 건물은 인기가 없기 때문에 불과 30~40년이 지나면 철거되고 대체된다. 연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1%가 건설 및 건축 자재에서 발생한다. 전체 항공 산업 탄소배출량의 5배에 달하는 양이다. 미국에서는 12개월마다 약 9300만㎡의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 지어진다. 영국에서는 매년 5만채의 건물이 철거돼 1억2600만t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중국에서는 2021년 건설업에서 32억t의 폐기물이 발생했고 2026년에는 40억t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는 “건물을 짓는 것은 환경에 나쁘고, 건물을 지었다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 것은 환경에 훨씬 더 나쁘다”면서 “따분한 건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2000년 전 로마의 비트루비우스는 ‘건축론’에서 건물은 피르미타스(힘), 우틸리타스(기능), 베누스타스(아름다움)을 두루 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힘), 지어진 목적에 맞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하고(기능),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아름다움)고 주장했다. 현대의 건축물은 힘과 기능에만 신경을 쓰고 아름다움은 걷어차 버렸다. 저자는 그 시작을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에서 찾는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스쳐 지나가는 장식품이 아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기능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의 신념을 ‘장식은 폐지해야 한다’ ‘도시는 직선을 중심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건물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모든 건물과 장소는 주로 직선과 직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거리를 폐지해야 한다’ ‘건물 내부가 외부보다 중요하다’ 등으로 정리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모더니즘 건축 이론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싶어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저자는 “비인간적인 건물이 인간과 지구에 재앙과 다름없을 인지해야 한다”면서 “우리 세계를 인간화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시한 ‘인간화 원칙’은 “건물은 곁을 지나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기능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건물을 경험하는 모두에게 불어 넣는 감정”이라고 선언한다.

“대중은 무지하고 틀렸다고 말하는 터무니 없는 사고 구조를 버려야 한다. 대중은 틀릴 수가 없다. 대중이 사랑하는 건물이 허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물 디자이너는 대중을 뮤즈로 삼아 대중을 매료하고 대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 건축가의 최우선 관객은 대중이다. 다른 건축가가 아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