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격<格>

입력 2024-11-28 00:37

정장은 격식을 갖춘 옷차림을 말한다. 요즘엔 서양 슈트를 정장이라고 한다. 통칭 양복이다. 편의, 실용의 측면에서 양복 입는 것 자체를 정장 착용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 가족, 회사를 포함한 소속 공동체, 국가 등을 위해 유무형의 뭔가를 얻으려고 형식과 예의를 요구하는 친교 사교 협상 등의 격 있는 자리에 갈 때는 제대로 입어야 한다.

남성 양복 정장의 경우 위아래 같은 천 같은 색상으로, 구김이 생기지 않도록 품에 맞게 입어야 한다. 넥타이의 매듭은 대칭으로 비뚤어지지 않게, 길이는 허리띠 버클을 살짝 덮을 정도여야 한다. 길거나 짧으면 어설퍼 보인다. 드레스 셔츠의 구김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커프 링크스는 소매를 접어 양쪽을 맞대어 끼우는 게 원칙이다. 드레스 셔츠와 버클, 바지 지퍼 라인을 맞춰 입어야 깔끔해 보인다. 바지가 처지면 멜빵을 사용하는 게 좋다. 양말과 구두는 옷 색깔에 맞추고, 앉았을 때 맨살이 보이지 않도록 목 있는 양말을 신어야 한다. 여성 정장도 대체로 비슷하다. 자리에 맞는 복장 양식에 따라야 한다. 원피스나 투피스류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드레스를 입거나 복장에 어울리지 않는 장갑, 과한 장신구를 착용해선 안 된다. 머리 모양과 화장도 마찬가지다. 속옷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

옷을 잘 입었다면 예절을 지켜야 한다. 참석하는 자리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미리 숙지해야 한다. 격 있는 자리에서의 인사는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이와 직위는 상관없다. 인사를 받았다면 응대해야 한다. 시선은 늘 상대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걸음걸이부터 표정과 눈빛 손짓, 말투와 목소리의 높낮이, 앉는 자세까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편한 게 좋다고 형식을 간과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많을 수 있다. 복장은 모임과 참석자에 대한 배려와 태도, 분수와 품위인 ‘격’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기본 척도다. 상대에게 기본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면 대화를 시작하기도 힘들다. 격이 맞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더라도 말에서 인격과 품격을 나타내지 못하면 호감을 얻기 힘들고 친밀도를 높이기 어렵다. 격을 맞춰주지 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겉돌기만 하다가 아예 배제돼 버린다. 격은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모양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고쳐진 상태를 말한다. 이미 그렇게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격은 머리와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불편하다. 그래서 예전 상류층 가정은 어릴 때부터 가혹할 정도로 복장 예절 인격 품격 등을 가르쳤다. 어느 자리, 어느 직위를 갖더라도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높은 자리, 대단한 인맥을 가졌어도 격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착장은 차치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충동적이고, 거친 말이나 상소리를 많이 하고, 남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배려할 줄 모르고, 공적인 자리에서 아랫사람을 하대하거나 무안을 주고, 비아냥거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헤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가졌으나 갖추지 못한 사람, 소유했으나 존재를 상실한 사람, 사회적 위치를 자신과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사람, 모두 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격 없는 모습을 요즘 너무 자주 보고 있다.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 인격 품격을 보이지 못하거나 없을 때 자격이 없다고 한다. 격 없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이라도 맡기면 안 된다. 격 없는 자리에서 격 없는 사이인 사람과만 만나면 된다. 격 없는 자리, 격 없는 사이라도 인격 품격 예의 없이 상대를 대하는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