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독버섯이 자라는 산

입력 2024-11-28 00:38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달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나무위키의 특정 문서에 대한 접속 차단을 의결했고, 지난 21일에는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일명 ‘나무위키 투명화법’(정보통신망 이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이용자 수나 매출액 등으로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는 기준에 트래픽을 추가하는 것이다. 2021년 기준 하루 페이지뷰가 최대 400만회에 이른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 본사를 둔 나무위키의 소유법인 ‘우만레 에스알엘(umanle S.R.L)’은 국내 대리인을 둬야 한다. 여기에 몰수·추징 및 과징금 제도를 도입해 수익을 환수하는 한편 불법 정보 거부 등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광고 및 광고 중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광고주까지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추가됐다.

김 의원과 국민의힘은 딥페이크 음란물과 가짜뉴스 등 불법 콘텐츠와 사생활 침해 소지가 다분한 게시물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집단지성이 편집하는 자율적 백과사전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이 악의적으로 편집할 수 있고 ‘낙인찍기’와 같은 인권침해가 가능한 만큼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개정안은 나무위키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자율 규제 시스템을 간과하고 있다. 나무위키는 인터넷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고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 너와 나의 지식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탄탄한 백과사전이 되고 다시 공유된다. 물론 아무나 쓸 수 있으니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기재되거나 편향된 서술이 올라올 수 있다. 그건 인터넷의 피할 수 없는 생태적 특성인데, 나무위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권리 침해 신고와 게시글 제한 신청, IP 차단, 중재 요청 등 다양한 장치를 운영 중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고 제약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따로 있다면 그건 모순이다. 나무위키처럼 인터넷 이용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는 플랫폼을 불법 콘텐츠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표현의 자유는 물론 디지털 공간의 자율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그런 논리라면 유튜브, 페이스북, 엑스(X) 등 각종 SNS 플랫폼과 타인 혐오나 음란물, 가짜뉴스 등이 오르내리는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는 모두 검열과 접속 차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 압력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국민의힘은 2022년 대선에선 나무위키를 공약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당시 원희룡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은 발상의 전환을 하겠다며 나무위키를 통해 모든 정책과 공약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검증되지 않거나 편향된 서술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엔 ‘집단지성과 협업으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필요할 땐 이용하다가 불리한 정보가 있을 땐 검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이를 제약하려는 모든 시도는 가장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국내법을 준수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이라면 검열이나 접속 차단이 아니라 나무위키의 자율규제 시스템을 보완하고 사용자 참여를 지원하는 방향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 나무위키 검열 논란은 특정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와 통제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대다. 산에서 독버섯이 자란다고 아예 산을 오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표현의 자유와 집단지성이라는 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독버섯만 걷어낼 지혜가 필요하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