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지 없으면 의사와 대화 힘들어… 병원에 장애 친화적 환경 조성됐으면”

입력 2024-11-28 03:04
시청각장애인 사회복지사 양희동씨가 수어통역사와 함께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자유발언대회 ‘달팽이광장’에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주 소리가 시끄럽다.”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 박관찬(37)씨가 연습 중 이웃에게서 받은 메모의 내용이다. 그는 듣지도 못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죄송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걸 본 이웃은 “당신이 듣지 못하는 첼로 소리를 제가 대신 들어드리겠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씨는 이런 사연을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자유발언대회 ‘달팽이광장’에서 전한 뒤 첼로를 들었다. 그가 연주한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 OST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음정이 다소 불안정한 연주였지만 관객의 마음에는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이날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센터장 정지훈)가 주최한 제3회 달팽이광장은 시청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아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나누는 자리였다.

중증 난청인 김미정(40)씨도 피아노를 연주했다. 선율을 전하는 수어 통역사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현장에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비롯해 음성증폭기 등 각종 보조기기도 비치됐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소개하는 이들은 시종 진지한 표정이었다. 최근 계단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 간 김복자(68)씨는 “의사와 대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간 메모지가 없었다면 정말 막막했을 것”이라며 의료계에도 장애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랐다. 시청각장애인인 김지현(55)씨는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덕분에 다른 시청각장애인과 소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국내 시청각장애인 박사 1호 조영찬(53)씨의 발언도 이어졌다. 그는 “나는 기억과 상상, 무의식 세계 등의 감각이 남은 ‘삼관인’”이라며 “내 언어 세계는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우주로 기억과 상상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이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는 2020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로 맞춤형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