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세계여행을 통해 배운 사모의 성장이야기

입력 2024-11-30 03:05
유승현(왼쪽) 목사와 황수빈 사모가 배낭을 메고 지난해 10월 20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361일간 21개국 95개 도시의 교회와 선교지를 탐방했다. 황수빈 사모 제공

11월은 교역자들이 새로운 공동체로 이동하는 시기다. 섬기던 교회를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사역에 대한 고민이 교차하지만, 목회자와 사모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도 된다.

우리 부부는 이맘때면 국내외로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매사에 계획적인 남편도 “지금 아니면 못 간다”는 내 말에 결국 웃으며 동참하곤 했다. 낮선 곳으로의 여행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 좁아진 생각과 시야를 넓히고 특별한 추억을 쌓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짧은 여행도 결단이 필요한데 361일간 ‘세계여행’을 다녀온 목회자 가정이 있다. 유승현 목사와 황수빈 사모는 오세아니아를 시작으로 미국 남미 등 21개국 95개 도시의 교회와 선교지를 탐방했다. 쉽지 않은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황 사모를 최근 인천에서 만났다.

결혼 전 유 목사는 “전 재산을 처분해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는 말로 여러 자매들에게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사모의 자리도 부담스러운데 전 재산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자매들이 외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 목사에게 세계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교회와 선교지를 돌아보며 교회의 위기와 다음세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답을 찾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 여정을 함께할 아내가 필요했던 이유다.

황 사모는 이런 유 목사의 진솔함에 마음이 이끌려 만난 지 6개월 만인 2022년 10월 결혼의 열매를 맺었다. 그는 “사모가 된 뒤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남편이 농담으로 ‘사모병 걸렸네’라고 하더라. 과연 ‘좋은 사모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3월 두 사람은 모은 전 재산으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최소한의 옷과 필수품만 챙긴 이들의 여행 콘셉트는 ‘처음 뵙겠습니다’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정해진 계획 없이 움직였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즉석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때론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황 사모는 전공을 살려 통·번역으로 남편의 사역을 도우면서도 ‘좋은 사모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1년 차 새내기 황 사모의 눈에 비친 21개국 95개 도시의 교회와 사모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이민 목회와 사역, 육아를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의 열매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들의 섬김과 진심 어린 환대는 큰 감동이었다. 방을 내어주고 정성껏 식사를 챙기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이 나이에도 사모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냥 옆에서 밥 잘 챙기면 되는 거지 뭐.”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난 평균 나이 87세의 사모들이 전한 이 소박한 조언은, 사모란 남편이 목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상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와 황 사모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깨닫게 된 ‘좋은 사모란 무엇인가’에 질문에 황 사모는 “사모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하며 주님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사모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361일 만에 귀국한 황 사모는 꽃 가게를 운영하고 유 목사는 유튜브 ‘유목민’ 채널로 국내 교회 탐방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채널 이름처럼 언제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떠날 준비를 하며 비전을 세우고 있다.

황 사모의 고백처럼 목회의 길고 고단한 여정에서 사모는 일상을 함께하며 돕는 배필로 주신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이다. ‘좋은 사모란 무엇일까’ 답은 각각 다르겠지만 목회자의 일상을 돕고 교회를 섬기는 모든 사모들이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길 응원하며 기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