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지난 8월 5일 아침,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나와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목원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이요한 박사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카카오톡 메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올해 마흔일곱 살인 그의 장남이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오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원주기독병원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그 장례식에서 내게 위로의 말씀을 부탁한다는 집례자의 말에 옆에 있는 이 박사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울음이 그치고 나는 몇 마디의 조사를 그 자리에서 했다.
내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다. 14년 전이었다. 나는 세 아들 중 막내인 태용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당시 아들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나는 너무 슬퍼 울고 또 울어야 했다. 물론 태용이는 믿음의 아들이니 하나님이 부르셔서 천국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육신의 아버지인 나는 내 혈육인 막내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아비로서 너무 슬퍼 울고 또 울어야 했다.
비록 목사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때 그 슬픔은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아픈 것도 아프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하는 것은 참된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경에도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던가. 사랑하던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누이 동생인 마르다,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아마도 그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도 거기에 공감해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아무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이 박사의 아픔과 슬픔을 나 자신이 먼저 경험했기에 나는 그를 안고 계속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 박사가 나를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 장례식에 감독님이 오셔서 나를 안아주시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어버이로서 함께 울어주신 것이 제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로마서 15장 12절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이다.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담대히 말하고 싶다. 바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상대방이 기뻐할 때 나도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이 슬퍼하고 아파할 때 같이 그 슬픔을 공감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곧 진실한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약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본부 회장 △서울 도봉감리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