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택권 목사의 지성을 그리스도에게로] 어제를 존중하라!

입력 2024-11-28 03:07

매해 이맘때면 이 생각 저 생각 지난날 일들이 스쳐 간다. 10대 중반 1·4후퇴 때 집을 떠난 후 뵙지 못한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일본어를, 6·25전쟁 전 5년간은 볼셰비키혁명사와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을 통해 러시아어를 배웠고 196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 가려고 영어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변변히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당시는 미국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유식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부끄럽게도 난 미국 생활 중 한국사를 혼자 배웠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할 때 토요일마다 열리는 한글학교를 ‘한국전통 프로그램(Korean Heritage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켰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발상지이며 역사와 문화, 교육도시이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을 도운 고(故) 서재필 박사의 미국 고향이기도 하며 오늘도 ‘서재필기념사업재단’이 많은 사역을 하는 곳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서 박사님의 유해를 내가 섬겼던 필라델피아연합교회 묘지에 모셨다가 고국의 국립묘지로 운송해 모신 적이 있는데 부족한 내가 집례했었다.

신앙인은 우리 전통을 지켜야 할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단지 내 나라의 귀한 유산이기 때문이어서만은 아니다. 더 귀한 이유가 있다. 많은 민족 가운데 하필 나를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애국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 중 첫걸음이다.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에는 반드시 우선순위가 있다. 주님도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사 46:9)고 하셨다.

전통을 소중히 지키려고 한 성경 속 이삭의 모습을 살펴보자.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웠다. 그러나 이삭은 이를 다시 파서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불렀다. 결국 갈등 끝에 이삭은 우물을 양보하고 자리를 옮겨 새 우물을 팠다. 이삭은 전통을 지키고자 아버지의 우물을 지키려 했지만 그 속에 샘이 없자 자리를 옮겨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창 26:12~23)

최근 은퇴한 목사 뒤를 이어 부임한 새 담임목사가 얼마 못 가 사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부임하자마자 주보 표지부터 바꾸는 등 소위 ‘개혁운동’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물엔 샘이 있어야 하듯 교회의 사명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며 챙겨야 했다. 개혁하되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그곳이 오랫동안 지녔던 풍성한 지난날의 배경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았을까.

삶이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세 종류의 ‘시상’(tense) 속에서 유지된다. 태어났을 땐 그 순간만이 존재하는 ‘현재’로 시작하고 십 대가 되면 ‘미래’로 움직이며 나이가 들면 지난날을 되새기는 ‘과거’ 속에서 살아간다.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라”(사 43:18)고 했다. 지난날 전통을 중히 여기되 ‘어제’에 얽매인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지난날의 ‘센티멘털(감성)’에 빠지거나 ‘노스탤지어(향수)’에 묶여서도 안 된다. 성경 속 도시 소돔에서 유황불 심판을 피해 집을 떠나던 롯의 아내는 다 버리고 도망가는 중 뒤를 돌아봤다. ‘어제’가 그를 붙잡은 것이다. 어제의 망상은 앞을 향한 전진을 멈춘다. 물론 우리는 ‘어제’를 돌이켜 살핌으로 계몽이나 변화될 수도 있다.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마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위선자들을 책망하신다. 전통은 지키되 사리사욕으로 꾸며진 전통은 조심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참 전통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지혜를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웨이크신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