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트럼프 지지한 복음주의 교단

입력 2024-11-29 00:30

도널드 트럼프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지층은 피격 이후 트럼프를 구국의 메시아처럼 추앙했다. 그를 힘껏 도왔던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지도자들도 환호했다. 트럼프의 주요 당선 공약 중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및 국경 장벽설치 계획, 그리고 난민 정착 정책을 일시 중단하는 일도 미국 복음주의 교단들이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이유였다. 불현듯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가 떠올랐다.

하버드대 신학부에서 평생을 가르쳤던 하비 콕스 교수는 2000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신앙(faith)’과 ‘믿음(belief)’을 뚜렷하게 구분하고자 시도한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시대로 시작했다. 예수와 그의 직계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운동은 예수 사후에도 그의 길을 따르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열기와 규모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예수의 영(靈)을 품은 이들은 제국의 야만적인 박해에도 전혀 거침이 없었다.

3세기 말부터 또 다른 시대가 움트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제국을 지배하려는 그의 정치적 열망을 위해 다소 생경한 계획을 세운다. 400년 가까이 식지 않는 광범위한 신앙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는 불법으로 여겼던 예수 추종세력의 신앙 행위를 합법으로 만드는 칙령을 내렸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계속해서 예수와 더불어 태양신 헬리오스도 숭배했다.

동기가 어찌 됐든 콘스탄티누스의 정책과 그의 후계자들의 정책은 그리스도교를 명실상부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라는 최고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배후로 둔 그리스도교는 이후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고 콕스는 평가 절하한다. 활기 넘치던 신앙운동이 변질돼 각종 신조(信條)들을 만들어가는 ‘믿음’의 종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과 교회가 연대하여 만든 ‘믿음’의 종교가 무려 1500년간 지속됐다. 이런 ‘믿음’의 시대가 이젠 끝난 걸까.

콕스는 놀랍게도 이런 ‘믿음’의 종교가 현대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의 토대를 놓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2기 정부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의 모습은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의 합병과 자꾸만 겹쳐 보이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필자는 그런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모습에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한국 개신교회의 모습도 가끔씩 겹쳐 보인다. 가장 강력한 ‘믿음’은 가장 배타적인 행태로 이어질 때가 많다.

2007년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보도했던 테레사 수녀의 서한집이 떠올랐다. 서한집에서 테레사 수녀는 신의 존재에 대한 괴로운 의심과 씨름했다고 고백했는데, 그녀의 글은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고백의 시기는 바로 노벨평화상 수상 직전이었는데, 그녀에게 불신의 상태를 숨기고 산 위선자라는 비판이 휘몰아쳤다. 당시 한 여학생이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각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문제보다 오히려 무엇을 ‘믿느냐’의 기준으로 바꿔 규정하는 사회가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 제기였다.

그렇다. 어떠한 이유라도 ‘믿음’이 ‘삶’을 규정할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포용의 삶을 ‘사는’ 종교여야 한다. 근본주의 종교가 그들의 믿음과 신조를 절대시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내쫓는 삶을 산다면 또다시 제국 그리스도교의 타락을 재현할 수밖에 없다.

혹여 일부 그리스도인은 제왕적 대통령이 외치는 ‘미국 우선주의’마저 그리스도교 믿음을 지켜내는 신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인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일이라 믿는다면 이는 분명 깨뜨려야 할 반(反)신앙적 신조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