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작동 불가능한 트럼프의 ‘경제 실험’

입력 2024-11-28 00:34

관세, 불법이민 추방, 감세 등
모두 고금리, 달러 강세 초래
‘저금리·달러 약세’가 필수인
트럼프노믹스와 정반대 효과

초기엔 무역수지 개선 등 효과
시간 갈수록 인플레 등 부작용
2026년엔 공화당 고민 될 것

트럼프 계획 맹신 말고
거시 변수 급변 면밀히 살펴야

미국 대선이 끝난 지 20여일이 됐지만 미국뿐 아니라 한국 일각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2기’에 대한 기대와 열광이 식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주식과 가상화폐 급등으로 이득을 본 투자자들의 낙관이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트럼프 2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트럼프가 거듭해서 강조해 온 핵심 경제 공약은 크게 세 가지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나 그 이상의 관세 부과(보편관세, 중국산은 60%), 불법이민자 추방, 그리고 대규모 감세. 문제는 이 모두가 ‘다시 미국 경제를 위대하게’ 하기 위해 트럼프가 강조해 온 ‘저금리-달러 약세’라는 거시경제 변수 조정과 정반대 효과를 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셈법은 이렇다. 저금리는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을 낮춰 소비와 투자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달러 약세는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수출을 늘려 무역수지를 개선할 것이다.

트럼프의 첫 번째 경제 공약,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 보자. 초기에는 해외로부터의 수입(import)은 감소하고 관세 수입(revenue)은 늘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줄어들 것이다. 모두 트럼프가 원하는 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세 부과로 수입이 줄면서 미국 내 물가는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다. 유럽이나 중국 등이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 가격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 내 금리가 높아지면 고금리 수익을 좇아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 달러화는 더 강세를 나타낼 것이다.

이민은 어떤가. 미국 내 불법이민자는 약 1100만명. 트럼프 정권인수위는 매년 100만명을 10년에 걸쳐 추방하려고 한다. 100만명은 미국 총 취업자의 0.5%로, 계획대로라면 10년간 5%의 노동력이 줄어든다. 구인난이 심해지면서(인건비 상승) 지속적인 인플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공약, 감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인 2017년 35%에서 21%로 낮춘 법인세율을 다시 15%로 인하할 계획이다. 또 미국 서비스 노동자들이 받는 팁, 저소득층 사회보장 혜택 등에 부과되던 세금을 없애겠다는 공약도 법제화할 계획이다. 문제는 추가 감세로 이미 빨간불이 켜진 미국의 재정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00%에 달한다. 올해도 GDP의 7%에 가까운 재정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가중시켜 미 국채 매입 시 요구하는 이자율을 상승시킬 것이다. 이는 경제 전반의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트럼프 당선 후 꾸준히 오르는 미 국채 금리는 그 전조(前兆)로 봐야 한다.

물론 트럼프가 약속한 규제 완화와 감세가 기업의 혁신을 자극해 미국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노믹스의 일부 긍정적 영향도 보편관세와 불법이민자 추방에 따른 인플레이션 자극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기서 관건은 미 연준의 대응이다. 과연 연준이 트럼프의 ‘위협’에 굴복해 인플레가 심해지는데도 저금리를 유지할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연준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월가도 훼손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 미국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경제석학 올리비에 블랑샤르 MIT 명예교수의 전망은 들어볼 만하다. 그는 “트럼프 집권 후 당분간은 바이든 행정부가 불붙인 호황의 관성도 작용해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초기의 긍정적 효과는 잦아들고 역효과가 현저해질 것이며, 2026년 중간선거 무렵이면 인플레가 공화당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 경기와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의 동학(dynamics)을 감안하면 블랑샤르 교수의 전망은 매우 현실성 높은 시나리오라고 생각된다. 트럼프의 계획대로 미국 경제가 흘러가지 않음은 물론, 정반대의 거시경제 환경에 맞닥뜨릴 가능성을 가계와 기업이 열어놓아야 할 것 같다.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