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중국·멕시코·캐나다를 겨냥한 ‘관세 폭탄’ 발언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스타일이 담긴 발언이란 평가가 나온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6일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 무역협정(USMCA)을 맺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각각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우리로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지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연임이 불가능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과 공약부터 속도감 있게 풀어가려는 것 같다”고 했다. 25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 당일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도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엄포는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노린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애덤 포즌 소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주최 콘퍼런스에서 “미국 관세 정책의 핵심 타깃은 중국과 멕시코”라며 “다른 국가에는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공약인 ‘대미 무역흑자 개선’ 착수 시점에 따라 관세 폭탄의 칼날이 한국을 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 올 3분기(1~9월)까지 대미 무역에서 399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 순위에선 중국 멕시코 베트남 등에 이은 8위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대미 흑자국 순서대로 중국 멕시코 등 신흥국부터 접근할 경우 한국은 조금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을 꾸준히 거론해 온 만큼 조만간 통상 정책 타깃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폭탄’ 현실화에 대한 한국의 손익계산서는 엇갈린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25일 발간한 ‘2025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10~20%의 보편 관세와 중국에 60~100%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보편 관세가 20% 수준일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도 최대 93억 달러(약 13조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으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기계업종 등은 2021~2023년 평균 수출액 대비 최대 2.6% 포인트 수출 증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언급한 ‘조선업 협력’이 통상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중국과의 해군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내 조선업계와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조선업이 관세 압박에 대응할 바게닝칩(협상 카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