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들이 결혼을 들여다보고 있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우리 마침내 결혼했어요’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혼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죠?’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행복한 결혼을 찾아 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결혼이 필수라곤 하지 않지만, 여전히 결혼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는 29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는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다. 1년의 ‘기간제 결혼’이란 소재를 내세운 이야기는 각자 결혼으로 불행해졌던 한정원(공유)과 노인지(서현진)가 기간제 결혼을 통해 서로의 불행과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트렁크’가 결혼을 낭만적 혹은 긍정적으로 담아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이 하나의 주체로서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결혼했을 때, 상대를 소유하려 할 때, 혹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결혼이 행복의 시작이 아닌 불행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MBC에서 최근 방송을 시작한 ‘지금 거신 전화는’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쇼윈도 부부로 지내는 백사언(유연석)과 홍희주(채수빈)가 한 통의 협박 전화로 위기를 맞게 된다. 대통령실 대변인과 수어통역사라는, 누군가의 말을 대신 전하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정작 서로 소통하지 않아 단절됐다가 위기를 거치며 진정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결혼을 그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계약의 산물(‘손해 보기 싫어서’)로 그리거나 해묵은 오해와 소통 단절로 결혼 생활을 망친 부부(‘눈물의 여왕’)가 진심을 터놓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드라마들은 앞서도 방영됐었다.
드라마들의 이런 흐름은 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와 이에 따른 고민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혼하면 끝이 아니라 결혼한 뒤에도 그 두 사람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보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6일 “과거엔 결혼하고 나면 그 이후의 관계는 마치 이미 결정돼서 바뀔 수 없는,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이혼도 하나의 선택지에 들어가 있다”며 “결혼 후 가장 중요한 건 개인으로서 내가 잘살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혼하고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이런 흐름의 드라마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아니다.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이기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소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사회 전반에서 겪고 있는 소통의 부재와 단절을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를 통해 묘사해내고 있는 셈이다.
정 평론가는 “결과적으로 좋은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다. 좋은 관계는 관계 때문에 개인이 희생되지 않는 걸 말한다”며 “결혼이란 틀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요소를 희생시키는 관계라면, 그걸 깨고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