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푸틴식 통치 스타일
닮아가는 트럼프 2기 인선
빅테크 거물들과의 유착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 독점
미국식 시장경제 모범국가
한국엔 더 큰 과제로 부상
경쟁력 쌓는 게 근본 해법
닮아가는 트럼프 2기 인선
빅테크 거물들과의 유착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 독점
미국식 시장경제 모범국가
한국엔 더 큰 과제로 부상
경쟁력 쌓는 게 근본 해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력한 지도자”로 치켜세우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마초식 통치 스타일이 놀랄 만큼 푸틴을 닮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때부터 드러난 권력 집중과 뒷골목 거래 행태가 그렇다.
미 언론은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는 트럼프 2기 내각의 면모를 보면 러시아 올리가르히(과두제)의 그림자가 자꾸 어른거릴 정도라고 논평한다. 이는 단순히 통치 스타일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변화로 다가오고 있다. 푸틴식 올리가르히는 구소련 붕괴 이후 등장했는데 공산당 출신 관료와 KGB 인맥이 권력과 이익을 나눠먹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트럼프의 과두제는 푸틴의 그것과 결은 약간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트럼프는 전통적 관료 조직 대신 거대 기술 기업과 금융 엘리트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을 시도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헤지펀드 창업자 스콧 베센트를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그 시작일 뿐이다. 암호화폐 업계의 거물들이 백악관에 신설될 암호화폐 위원회에 합류하려는 움직임과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장 자리를 노리는 상황은 이러한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산업 규제 철폐를 넘어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대체하겠다는 비전까지 내놓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정부 구조조정 전도사로 등장한 머스크의 부상은 1기 때 트럼프의 자녀들이 맛본 ‘아빠 찬스’와도 차원을 달리한다. 2016년 대선 승리 직후, 트럼프가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팀 쿡 같은 빅테크 수장들을 뉴욕 트럼프타워로 초대해 “당신들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치켜세우며 성공을 약속한 장면은 워싱턴 정가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당시 빅테크 거물들은 트럼프의 정책과 자신들의 이익이 충돌할 것을 우려했으나, 결국 트럼프의 삼고초려는 성공했다. 이번 대선에서 머스크는 막대한 선거 자금을 지원하며 트럼프의 우군으로 돌아섰다. 따라서 이같은 빅테크와의 유착이 낳을 폐해는 간단치 않을 거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와 빅테크 거물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결탁하면서 권력과 기술자본의 비대칭적 집중이 심화되고, 이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이미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우주 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모습은 단순한 이익 공유를 넘어, 기술 권력이 정부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구나 트럼프와 머스크는 자신들의 소셜미디어까지 동원해 여론을 마음대로 조작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당장 관세 폭탄을 무기로 한 거래주의의 공포는 한국 입장에서도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트럼프는 1기 때 밀실 거래를 통해 친트럼프 입장을 보이는 기업에 관세를 최고 25% 포인트 할인해주는 행태를 보였다. 관세 정책이 단순히 보호무역의 수단을 넘어 엽관주의 도구로 활용된 셈이다.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에서 마초식 행태를 더욱 노골화할 태세다. 그는 취임 당일인 내년 1월 20일 행정명령을 통해 3대 교역국인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관세 인상 계획을 바표했고, 이는 곧 한국과 같은 전통적 동맹국으로 타깃을 옮길 게 뻔하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첫째, 무역과 경제 협력의 다변화가 시급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EU, 동남아, 일본 등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야 한다. 둘째, 기술 경쟁력을 독립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자주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안보 자립도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면서도 한미 동맹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트럼프 시대가 끝나는 4년 뒤에도 그가 심어놓은 미국식 과두제의 폐해가 계속 이어질 것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전략이다.
트럼프 과두제는 그동안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의 우등생이었던 한국에 더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원칙을 지켜내면서 트럼프를 설득할 명분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한한령으로 한국을 괴롭히던 중국이 최근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걸 보면 답은 명백하다. 우리가 원칙을 지켰기에 중국이 다시 손짓을 하는 것이고 트럼프 2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