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

입력 2024-11-27 00:35

건설 인력을 '노가다꾼'이라
깔보지만 일반인과 비슷한
고민과 보람 갖고 사는 이웃

“뭐 인마? 어린놈이 싸가지 없이”라고 말한 철근팀 반장(이하 철근)은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안전모를 집어 들었다. 그대로 앞에 앉은 전기팀 반장(이하 전기) 머리를 후려쳤다. ‘빠각’ 하는 소리가 안전교육장에 울려 퍼졌다. 50명 남짓한 인부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어린놈이라기엔 ‘전기’ 또한 50대 초반 정도는 돼 보였다. 잠시 머리 감싸 쥐는 듯하던 ‘전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들어 ‘철근’에게 던졌다. 우당탕. 그때부턴 그야말로 개싸움이었다. 주변 사람이 뜯어말려 상황은 금방 정리됐다. 요란한 소음이 민망할 정도로 유혈사태 같은 건 없었다. 약간의 긁힘 정도.

어쨌거나 어안이 벙벙했다. 공사판에 첫발 디딘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각오는 했다. 풍문으로 들은 얘기도 많았다. 실제로 그 일주일간 ‘조카 신발’로 시작해 ‘주옥같네’로 끝나는 욕, 숱하게 먹었다. 그래도, 지천명(知天命)의 주먹다짐을 볼 줄이야. 심지어 그 이유가 너무 사소했다. ‘철근’이 떠들었고, ‘전기’가 반말 좀 섞어 조용히 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때 난 직감했다. 아, 여긴 정글이구나. 그 뒤로도 세대와 체급 초월한 주먹다짐을 두어 번 더 목격했다. 그보다 10배쯤 드잡이하려는 아저씨들과 말리는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휘말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6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슬슬 퇴근 준비를 하는데 ‘김씨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김씨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장 경력 30년에 나이는 60대 초반, 급한 성질과 거친 입담, 거무튀튀한 피부에 훤히 드러난 이마, 불룩한 배와 팔자걸음, 취미는 매우 당연하게 낚시(터에서 마시는 소주)인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건설노동자의 표준.

“아휴~! 집 가기 싫어. 집 가면 또 강아지 목욕시켜야 하는데 구찮어 죽겄네~~!”

사연은 이랬다. 결혼한 딸이 근처에 사는데 토요일이면 남편과 데이트한다며 키우는 강아지를 맡긴단다. 그냥 맡기는 게 아니라, 목욕시켜 놓으라는 부탁(또는 명령)과 함께.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상상해 보라. 현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꾼이,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강아지 목욕시키는 장면을 말이다. 그것도 딸이 맡기고 간 강아지를. 다신 펜을 들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인력사무소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김씨 아저씨 투정 듣고 온 날,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펜을 다시 꺼냈다. 쓰고 싶었다.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에 관해.

나 또한 그랬다. 김씨 아저씨 만나기 전까지,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 바닥을 바라봤다. 그럴진대, 공사판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내 책 ‘노가다 칸타빌레’ 서문에서도 밝혔듯 우리는 여전히 “요리하면 셰프라고 대우해 주고, 옷 만들면 디자이너라고 부르면서, 집 짓는다고 하면 노가다꾼으로” 뭉갠다. 물론, 지금도 많은 건설노동자가 담배 물고 망치질한다. 아무 데나 가래침 탁탁 뱉는다. 걸쭉한 농담 주고받으며 낄낄거린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편견과 선입견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리 단편적이지 않다. 같이 일하는 A형님(내년에 환갑, 결혼한 지 30년 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실하게 출근한다. 그 형님 1년에 딱 하루 쉰다. 아내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끓여주고, 나들이 가야 한단다. B형님은 아들이 야구선수다.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은가 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망치질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고깃집 가서 밤늦게까지 불판 닦고 서빙한다. C형님은 아들딸 하나씩 있는데, 둘 다 결혼하고 직장도 다닌다. 근데도 명절이면 거꾸로 용돈 챙겨준단다. 남편 몰래, 아내 몰래 주머니 쌈짓돈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라며. 다들 그렇게 망치질하며 살아간다. 여기도 다르지 않다.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다.

송주홍 작가·건설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