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까? 아니다. 박빙 승부를 예상한다. 눈에 띄게 노쇠하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이 간신히 승리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바이든의 연임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트럼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24년 세계 전망’에서 내놨던 미국 대선 예측이다. FT 예측 팀은 2023년 전망에서 단 3개만 틀렸다며 2024년 예측에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거부하지 않았다. 박빙 승부도 아니었다. 심지어 바이든은 눈에 띄게 노쇠한 탓에 대선 후보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국경 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던 FT의 예측도 틀렸다. FT는 양측의 뒷배인 미국과 이란이 역내 분쟁 확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미사일을 쏘아 대며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FT는 또 일론 머스크의 엑스(옛 트위터)가 광고 급감으로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엑스는 파산하지 않았고, 머스크는 트럼프에게 베팅한 것이 성공해 대박이 났다.
물론 FT의 모든 예측이 틀린 건 아니다. 키어 스타머의 영국 총리 등극 등 자잘한 것들은 맞혔으나 굵직한 관심사들을 못 맞힌 게 뼈아프다.
그래도 몇 달 뒤 일에 대한 예측이었다는 점에서 오류와 실수를 슬쩍 비웃고 넘어갈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선 선거 당일까지 예측 오류가 난무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예측불가 초박빙, 금세기 최대 접전’이라고 계속 보도했는데, 이들의 여론조사만 접전이었을 뿐 실제 결과는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정파적(반트럼프·친민주당) 성격이 강한 주류 매체들이 미국의 진짜 민심을 애써 외면해온 건지, 민심이 주류 언론을 배척한 건지 잘 모르겠다. 둘 다였을 수도 있겠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자체 예측 모델을 가동했는데, 지난달 19일 트럼프 당선 확률이 카멀라 해리스를 제쳤다고 보도했을 때 멈춰야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거 전날 두 후보 승률이 50대 50이 됐다고 하더니, 선거 당일엔 56대 43으로 해리스 당선 확률이 높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10월에 역전해 승기를 잡았다가 11월 들어 해리스가 맹렬히 따라붙어 선거일에 재역전했다는 스토리인데, 참으로 드라마틱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유력 매체들의 예측이 틀렸다고 실컷 비웃기는 했지만, 사실 중대한 사안에 대한 예측이 적중하기란 힘든 일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용하다는 예언가·점쟁이를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언론은 틀리더라도 계속 예측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의 가장 거대한 불확실성이던 트럼프 재집권 여부가 해소되고 나니 내년 예측은 한결 쉬워진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월드 어헤드 2025’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초 출범하면 세계는 냉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4개 독재 국가(북한·중국·러시아·이란)가 서방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텐데, 이를 억지해야 할 미국의 힘은 눈에 띄게 작아질 것이란 예측이다. 이런 지정학적 측면뿐 아니라 무역과 기후위기 대응 등 다른 수많은 분야에서도 우려스러운 상황이 예상된다.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못 막았으면 맞춰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다 보면 의외로 최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 보자.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