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매해 12월이면 발표되는 ‘올해의 사자성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연례 기획으로 전국 대학교수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되는데, 한 해 동안 세상을 뒤흔들었던 굵직한 사건과 사회 분위기, 시대적 정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발표된 사자성어는 우리 사회가 처한 어두운 현실을 조명하는 동시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2014년에는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인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2020년에는 ‘나는 옳고 남은 틀리다’라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되었다. 진실이 왜곡되고 허위가 진실처럼 둔갑하는 상황과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입장을 무조건 배척하는 사회 현상이 큰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지난해인 2023년에는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선정되었다.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뜻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만 치우친 행동으로 인해 신뢰와 도덕성이 상실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단순히 일면만 본다면 우리 사회가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듯하여 낙담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반성하자는 취지 때문에 다소 비판적 측면이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참작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할 때 비로소 올해의 사자성어에 깃든 고무적인 힘이 발휘될 것이다.
두툼했던 달력도 딱 한 장 남았다. 연초의 야무진 계획처럼 내실을 다지고 싶었으나 부산하게만 지낸 것 같아 저무는 한 해가 아쉽다. 한 뼘 더 지혜로운 생각과 한 보 더 바른 행동으로 남은 12월을 채우겠노라 다짐해본다. 2024년은 어떤 사자성어로 기록될까. 언젠가, 경애화락(敬愛和樂)이 꼽히기를 바라본다.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화합하며 즐겁게 산다’는 뜻이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