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쪼개져 진행된 사도광산 추도식 사태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진정성 없는 태도가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일본 측에는 공식적인 항의 표명도 제대로 하지 않아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의 미온적 대응이 이어지는 사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추도식 불참에 되레 유감을 표하는 등 적반하장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한·일 외교 당국이 사도광산 추도식 사태에 대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외교 차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내부에서는 “일본이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이번 행사 협의 과정에서 일본 측 추도사에 한국인 노동자 동원 관련 ‘강제성’을 언급하고, 정무관(차관급) 이상의 고위직이 참석하는 성의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특히 추도사 관련 협상에서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위급 참석에 대한 우리 측 요구도 행사 직전에야 확정했다.
사도광산 추도식 업무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는 “추도사는 해석의 영역이라 할 수 있지만 참석자의 급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며 “추도사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 참석자 급을 높여서라도 유족에 예우를 다하려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추도식 이틀 전에야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참석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곧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나오자 크게 당황했다. 이어진 긴급 대책회의에서는 일단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을 수용키로 했지만, 이후 일본 측이 전달한 추도사 등 행사 세부 내용을 확인한 뒤 보이콧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적어도 역사 문제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데, 일본이 그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봤다”고 했다.
외교부는 그러나 대외적으로 극히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날 별도로 진행된 우리 정부의 자체 추모식에서도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주최 추도식 불참 자체에 이미 가장 강력한 항의의 의미가 담겼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그런데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지역과 협력했고, 한국 정부와도 정중히 의사소통을 해왔다”며 “한국 측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은 문제가 없다”는 발언도 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결정과 관련해 “일본 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 시의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는 새로운 설명을 내놨다. 외교부 입장은 교도통신이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 보도가 오보였다고 밝힌 직후 나온 것이다.
외교부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추도식 논란이 양국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저자세 외교’를 고수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이탈리아 피우지에서 열리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에게 항의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