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IT플랫폼 ‘투잡’… 수년째 적자에도 웃는 까닭

입력 2024-11-26 02:11
게티이미지뱅크

금융권 기업들이 야심차게 출시한 정보기술(IT) 플랫폼이 수년째 적자 행진 중이다. 기존 플랫폼 업계 강자들에 밀려 좀처럼 수익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만 미래 사업 확장을 위한 ‘씬파일러(금융이력부족자)’의 비금융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이면(裏面)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평가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운영하는 알뜰폰 브랜드 ‘KB리브엠’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시장점유율은 4.8%로 집계됐다. 80여개 업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실적은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2019년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100억원대 적자를 내며 누적 적자는 605억원에 달했다.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배달 플랫폼 앱 ‘땡겨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22년 출시 이후 3년여 만에 가입자 376만명과 가맹점 18만여곳을 확보하며 외적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업계는 땡겨요가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신한은행은 땡겨요 출시 이후 구체적인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금융권 대기업들이 잇달아 IT 플랫폼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배경에는 플랫폼 시장 특유의 선점 효과가 자리잡고 있다. 카카오톡(메신저) 배달의민족(배달 앱) 등 각 영역에서 이미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IT 전문업체를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게 지금의 플랫폼 시장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플랫폼 사업으로 얻는 씬파일러 고객 데이터가 영업이익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기존 금융권 기업들은 여신 상품 판매 가능 여부를 전통적인 신용평가 방식으로 판단했다. 신용카드 상환 실적, 대출 이력, 직장 재직 여부 등을 바탕으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를 들여다봤다. 이런 데이터가 부족한 이들은 신용이 낮다고 판단해 아예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대출 시장이 포화되며 각광받은 게 씬파일러에 대한 비금융 신용평가다. 휴대전화 사용 패턴, 인터넷 사용 기록 등 일상생활에서의 데이터가 중요한 신용정보로 떠올랐다. 휴대전화 요금을 연체하지 않는지, 가맹점 매출이 얼마나 나오는지 같은 사소한 이력이 모두 씬파일러를 판별할 귀중한 정보다.

홍보와 브랜드 가치 제고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플랫폼 시장은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상생 외면 등을 이유로 질타받는 일이 잦다. 반면 땡겨요와 KB리브엠은 낮은 수수료율·통신요금 등 동종 업계 경쟁자들이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며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기업인 신한·KB국민은행 입장에서는 서비스 적자를 데이터·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수조원 단위 이익을 내는 금융권에게 연 100억원 정도의 적자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며 “되레 그 정도 비용을 단순 투입해서 얻을 수 없는 고객 데이터와 모객 효과라는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