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이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입력 2024-11-26 00:35

광역지자체 이민청 유치 경쟁 지방의 절박함 보여주는 사례
국가 이미지 상승하고 있고 극단적 반대 세력 없어 긍정적
정책 총괄 컨트롤타워 필요해 이민자에 대한 인식 돌아봐야

요즘 전국 10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매달리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목표의 실체가 없다. 부산광역시와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등 10개 광역 지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일에 애면글면하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들 지자체의 목표는 같다. 이민청 유치다. 하지만 이민청은 설립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기관이다. 법무부가 2022년 이민관리청 설립 관련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해 12월 4차 외국인 정책 기본 계획에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 신설을 포함시켰지만 아직 법적 근거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이민청 유치에 달려드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다.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 중 하나인 경북도는 경북형 이민 정책을 발표했고 이민정책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지난 7일에는 국회에서 토론회도 열었는데 이철우 경북지사는 “저출생과 전쟁까지 선포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며 “이민 정책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세계는 지금 좋은 상품을 사오는 시대에서 얼마나 좋은 사람을 많이 데려오느냐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양질의 필요인력을 얼마나 많이 들여올 수 있느냐가 지자체는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유철균 경북연구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고아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연구 중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이민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례는 적지 않다.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정학적 특성상 국가 간 접근이 쉬운 유럽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과 네덜란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칼뱅주의 개신교도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는 ‘퐁텐블로 칙령’을 반포한 후 추방된 개신교도들 중 일부는 영국으로 이주해 상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고 산업혁명의 싹을 틔웠다. 스페인 통일왕국이 단행한 유대인 추방 명령 ‘알람브라 칙령’은 더 극적이다. 칙령 반포 후 스페인의 금융·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16~17세기 세계 무역을 호령하는 강국으로 우뚝 섰다. 반면 스페인 왕국은 60여년 뒤 파산했다. 물론 지금 미국과 유럽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미국은 불법이민에 대한 강경 조치를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재선출했고, 유럽에서도 난민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서 극우 정치세력이 세를 불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불법이민이나 난민의 문제는 이민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민을 불법이민·난민 이슈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이민자 증가율이 50.9%로 OECD 기준 세계 2위를 기록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이민자 중 외국인 유학생은 2013년 약 8만6000명에서 지난해 약 18만2000명으로 10년 사이 2배 넘게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양질의 인력이 유입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민자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치 상황도 나쁘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보수적인 정치 세력이 이민·난민 이슈에 대해 극단적 반대에 나서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여당이 더 적극적일 정도로 진보와 보수 어디에서도 맹목적 반대 논리는 거의 없다. 지방만 적극적인 것도 아니어서 지역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적다. 서울시는 가사관리사와 마을버스 운전기사 등 이민자 고용 정책 도입에 적극적이고 경기도도 이민청 유치에 나선 상태다.

현재 정부의 이민 정책은 고용 위주다. 외국인들이 각 산업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착을 돕고, 인력난을 겪는 지역·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기조다. 인구 감소를 막는 차원의 적극적 이민 정책을 고민하는 건 시기상조라 해도 우리 사회에 부족한 필요 인력을 이민자들로 채울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건 중요한 과제다. 문제는 양질의 인력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일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총괄하고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의 이민 정책 로드맵을 제시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민청의 설립을 적극 검토하는 동시에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한번 되돌아볼 때가 됐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