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락에서 건져준 친구는 현재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는 홍철호 정무수석이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올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기도원에서 내려가면 택시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의 전화는 즉각적인 기도응답과도 같았다. 수입도 없이 달마다 거액의 은행이자를 내면서도 불평보다 묵묵히 기도했던 내게 준 하나님의 응답인 셈이었다.
당시 친구의 김포 공장은 가동률이 떨어져 연간 수십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었다. 친구의 부탁은 하나였다. 가동률을 높여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취업한 뒤 나는 그동안 쌓은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하루 도계 2만 마리에서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7만 마리로 늘었다. 엄청난 성장세였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많은 사람이 몰려와 거래를 해줬다. 공장 가동률도 120%를 넘어섰다. 단기간에 공장을 정상궤도에 올린 덕분에 친구와 공동대표도 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갔을 당시 사명은 ‘플러스푸드’였다. 사세가 커지면서 이미지 쇄신이 필요해 ‘크레치코’로 사명을 변경했다. 일을 시작하고 8개월이 지나면서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었다. 입사할 때 닭의 부산물을 보너스로 받기로 별도 계약했었다. 보너스를 받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부산물 대박’이 터졌다.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닭의 부산물은 근위(모래집)과 닭발 등이었다. 이 시기에 닭발이 인기를 끌면서 결과적으로 보너스 금액이 예상했던 것보다 다섯 배 이상 커졌다. 큰 행운이었다.
내가 닭의 부산물을 보너스로 받기로 제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모두 내 수익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큰 수익을 다른 임원들과 나누기로 했다. 수입도 없이 이자로만 달마다 1000만원씩 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나누는 삶에 대한 소신이었다. 이 소신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었다. 회사가 급성장하던 때 임원들과 보너스 수익까지 나누자 회사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다. 모두 신이 나서 일하던 때였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물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공장도 좁아졌다. 경영진은 공장 확장 준비에 돌입했다. 그 시기 우연치 않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홍철호 대표가 2014년 4월 뜻하지 않게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당선 뒤 친구는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거래처 미수금을 모두 떠 안는 조건으로 2016년부터 회사를 맡았다. 하나님의 계획이셨고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크레치코에서의 훈련은 훗날 비즈니스를 키워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가마치통닭’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이 기간의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막장에서 시작한 일이었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숙인이 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 친구의 제안이 없었다면 난 재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무려 40년 동안 광야를 떠돈 뒤에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년의 훈련과 이에 앞선 극한의 고난은 내게 광야 40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고난을 통해 성숙했고 성장했다. 모든 게 훗날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