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맛·향으로 청소년 유혹
'담배 정의'에 해당안돼 규제 안받아
합성니코틴, 유해약물서도 빠져
지자체·보건소·금연센터 등
지역 맞춤형 정책 설계·시행해야
'담배 정의'에 해당안돼 규제 안받아
합성니코틴, 유해약물서도 빠져
지자체·보건소·금연센터 등
지역 맞춤형 정책 설계·시행해야
“시·군·구 보건소와 협력해 신종담배 규제 관련 정보와 의견을 수집하고 이를 상위 정책 결정 과정에 전달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더욱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을 촉진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신종담배 판매와 광고의 불법 사례를 모니터링해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청소년 대상 광고 전략과 노출 위험을 줄일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경기도금연사업지원단과 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 상록수보건소가 안산시의회에서 공동 주최한 ‘제1회 지역사회 금연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목소리들이다. 그간 정부 부처나 국회, 금연학회 등 중앙 무대에서 금연정책과 입법 관련 논의의 장이 주로 마련돼 왔으나 지역사회에서는 별로 없었다. 최근 청소년과 젊은 층 사이에서 신종담배 사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규제는 미흡한 반면 접근성은 높아 금연정책의 사각지대가 형성된 실정이다. 이에 지역사회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금연정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기도 금연사업 관련 기관이 선도적으로 나섰다. 경기도에는 지역 금연사업을 수행하는 49개 보건소가 있으며 이 가운데 31곳이 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 관할이다. 토론회에는 17개 보건소 금연 담당자들이 참여해 활발한 논의를 이어갔다.
‘담배 정의’ 확대 법 개정 공감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신종담배와 담배규제 정책’ 주제 발표에서 니코틴 파우치, 전자식 물담배 등 해외의 새로운 형태 담배와 한국 유입 가능성, 액상·궐련형 전자담배, 가향·캡슐담배 등의 국내 사용 실태를 전했다.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청소년과 젊은 성인층 중심으로 전자담배 사용이 늘고 있으며 궐련과 전자담배 등 담배제품 간 다중 사용에 따른 중독성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종담배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흡연자의 금연 의지가 떨어지고 여러 종류의 담배제품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금연을 시도하더라도 가중된 니코틴 중독으로 인해 금연 성공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부연했다.
이 센터장은 특히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배 정의’에 들지 않는 ‘담배 줄기·뿌리 니코틴, 합성 니코틴’ 등으로 만든 전자담배 액상은 담배 관련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담배는 궐련 단일 제품에서 이제 다양한 제품의 시대가 됐는데, 담배규제 정책은 1988년 제정된 담배사업법, 1995년의 국민건강증진법에 머물러 있다”며 시대 변화를 반영한 신속한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는 담배 정의 확대 법안이 9건 발의돼 있다. 담배사업법 담당 기획재정부가 보건복지부와 큰 틀에서 합성 니코틴을 담배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이견을 조율했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정책 추진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부회장인 김태민 변호사는 ‘신종담배 규제의 한계와 대응 방안’ 발표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액상 전자담배 무규제 국가”라고 직격했다. 특히 한번 피우고 버리는 일회용 액상담배의 경우 미국(2020년) 유럽연합(2024년 초) 프랑스(2023년) 영국(2025년 4월) 호주(2024년 1월) 등이 판매 또는 수입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규제가 없는 한국의 경우 액상 전자담배용 합성 니코틴 수입량이 2020년 56t에서 지난해 216t으로 급증했다.
담배사업법상 담배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면 국민건강증진법상 경고 문구 부착, 광고 금지 및 제한이 적용되지 않으며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무인 담배자판기에서 성인 신분증만 있으면 청소년도 본인 확인 없이 구매할 수 있다. 합성 니코틴 제품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 유해 약물’에서도 빠져 있다. 김 변호사는 “해당 법규도 담배사업법상 담배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물질이 적용 대상이고 청소년 유해 약물인지는 행정기관에 입증 책임이 있어 액상 전자담배 자판기 규제가 불가하며 판매·대여 금지 조항에서도 예외”라고 했다. 이어 “담배사업법 개정이 가장 우선이고 청소년 유해 물질에 합성 니코틴과 니코틴 유사 물질을 포함하는 쪽으로 대통령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담배에 가향 물질 함유를 표시하는 문구나 그림, 사진을 제품 포장이나 광고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국민건강증진법 위반에 따른 처벌 규정이 500만원의 과태료 부과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내년 11월 시행을 앞둔 ‘담배 유해성 관리법’은 담배 첨가물과 배출물 등에 대해 정부가 담배회사에 정보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세부 규정인 시행령과 시행 규칙, 각종 고시 등이 아직 제정되기 전이라 복지부와 식약처의 강력한 금연정책 의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담배회사의 마케팅에 악용되는 사례 근절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고 궁극적으로 담배회사 대상 소송 등에 도움 되는 자료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 금연정책 논의의 장 지속 마련돼야
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 조혜영 팀장은 “토론회를 통해 액상 전자담배와 가향담배의 확산에 따른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현행법과 규제가 신종담배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보건소와 지역 금연지원센터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 적합한 금연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장인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금연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경기도 전역, 다른 지자체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금연환경 조성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