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전력거래소가 발표한 ‘2024년 청정수소 발전 경쟁 입찰’ 결과에서 한국남부발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청정수소는 탄소 배출이 적거나 아예 없는 수소를 말한다. 이번 입찰 물량은 약 740만명이 1년간 쓸 수 있는 전력량인 6500GWh(기가와트시) 규모로, 남부발전이 다음 달 중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면 2028년부터 15년간 본격적으로 청정수소 발전에 돌입하게 된다.
청정수소로 생산된 전기를 사고파는 시장을 연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지난해 ‘청정수소 발전 의무화 제도’(CHPS)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발전 시장을 개설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가격 경쟁을 통해 수소 발전 경제성도 확보한다는 취지다. 남부발전 관계자는 24일 “지속적인 청정수소 발전 확대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기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주도하는 무탄소에너지(CFE·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 시대에 발맞춰 원전·재생에너지와 함께 수소가 재도약 채비를 갖추고 있다. 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석탄·천연가스 등을 대체하는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일조량 등 각종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60개국에서 4000만t 이상의 청정수소가 생산될 전망이다. ‘수소경제’를 국정과제로 설정한 정부도 2030년까지 수소차 3만대, 액화수소충전소 70개소를 보급하고 청정수소 발전 비중을 2036년까지 7.1%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수소경제를 위한 기술 협력과 국제표준 수립에 앞장설 것”이라며 “CFE 이니셔티브의 국제 확산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세계 주요국도 청정수소에 대한 정책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독일 일본 등은 수소 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해 대규모 지원 예산을 투입 중이다. 특히 미국은 넷제로(Net-Zero·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주요 에너지로 수소를 낙점한 상태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 1기는 수소 에너지 확대를 위한 ‘H2@Scale 이니셔티브’를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바이든 행정부에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미국 내 생산된 청정수소에 ㎏당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등 수소 산업 육성에 공을 들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 수소정책 추진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예산 삭감 과정에서 일정 부분 수소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국가 차원의 수소 정책에 미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동의하고 있어 수소 부문이 에너지 정책의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청정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블루·핑크수소 등으로 구분된다. 블루수소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원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60%가량 줄인 수소를 말한다. 핑크수소와 그린수소는 각각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얻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생산하는 ‘수전해’ 방식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인다. 다만 아직 발전 단가가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대량의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운송하는 인프라 구축도 관건이다.
이에 산업계에서 청정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수소 리뷰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수소 수요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7500만t을 기록했지만, 청정수소 생산 공급 비중은 1% 미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미래 수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잰걸음을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는 지난 5월 인천 서구 원창동에 세계 최대 액화수소 생산 시설인 ‘액화수소 플랜트’를 준공하고 상업 가동에 돌입했다. 5만㎡(약 1만5000평) 부지에 들어선 이 공장은 수소버스 5000대가 1년간 운행할 수 있는 3만t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수소를 냉각해 액체 상태(액화)로 운송하면 기체수소를 고압 압축해 튜브트레일러로 유통했을 때보다 10배가량 더 운송할 수 있다. 운송 비용이 절감돼 ‘수소 모빌리티’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31일 수소전기차 넥쏘를 잇는 7년 만의 후속 모델 콘셉트카 ‘이니시움’을 공개하고 수소차 시장 확대에 재차 시동을 걸었다. 내년 상반기 중 양산 모델인 신형 수소차를 공식 출시할 방침이다. 정부도 수소차 지원금 확대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수소차 보급을 위한 예산은 전년보다 26.3% 늘어난 7218억3000만원에 달한다. 내년 수소승용차 보급 목표도 1만1000대로 올해(6800대)보다 높여 잡았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수소 발전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100%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엔진발전기’ 상용화에 성공했다. 울산 효성화학 용연2공장에 설치된 1㎿(메가와트) 규모의 이 발전기는 용연공장에서 생산된 부생수소(그레이수소)를 연료로 쓴다. 1㎿ 전력을 수소로만 생산하면 석탄 발전 대비 탄소 배출량을 연간 7000t 줄일 수 있다.
세종=양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