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 소득 과세 여부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내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애초 과세 대상자 범위를 줄인 ‘보완 시행’에 힘이 실렸지만 이재명 대표가 과세의 기술적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뒤 기류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시행’에서 ‘폐지’로 급선회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사례와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과세 역시 결국 ‘명심(明心)’이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과세와 관련해 “대부분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당내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며 “‘과세증액 원칙’을 전제로 필요성과 현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과세 공제 한도를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해 조세 저항을 줄이되 과세 시행은 내년 1월 예정대로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최근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 가상자산 과세의 현실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뒤 다른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대표는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가 실제 추적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가상자산에 과세하려면 해외 거래소 등에서 거래된 가상자산 취득 원가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기술·실무적으로 완비된 상황인지 물은 것이다.
지도부 고위 관계자는 “일종의 ‘팩트체크’ 차원이지 당 입장은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나 과세의 기술적·실무적 문제는 없다고 단언하며 “공제 한도를 5000만원까지 상향하겠다는 것이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 공약이었고, 국민과의 약속이라 함부로 뒤집을 수 없는 당론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김 최고위원은 이날 가상자산 과세 여부에 대해 ‘토론 중’이라며 온도 차를 드러냈다.
이 대표가 언급한 기술적·실무적 우려는 과세 유예를 주장하는 정부·여당과 관련 업계가 근거로 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대표가 청년층 반발 등을 고려해 과세 유예에 힘을 실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정무적 판단도 내려야 하는 이 대표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공정과세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현실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금투세 폐지를 결정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실용주의도 좋지만 매번 명확한 원칙 없이 상황에 맞춰 결정하게 되면 다른 세제 관련 논의에서도 수세에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