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달 초 당선 연설에서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겠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만나 “우리는 황금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황금’은 더할 수 없이 좋은 상태를 일컫는다. 황금시장 황금어장 황금분할 황금연휴 황금인맥 황금콤비 등이 그런 예다. 상에도 최고란 의미에서 이 말이 붙고 황금색 상패도 많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KBO 골든글로브(황금장갑),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주는 골든부츠, 월드컵 최우수선수가 받는 골든볼 등.
좋은 의미의 이 말이 몇 년 전부터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엮여 나쁜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황금폰’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2019년 불법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논란이 된 유명 가수의 전화를 사람들은 황금폰으로 불렀다. 불법 증거물이 잔뜩 담긴 전화란 의미다. 지난 7월엔 10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먹방 유튜버를 협박한 혐의를 받은 또 다른 유튜버는 본인 전화가 불법 녹취가 많은 황금폰이라면서 검찰에 자진제출하기도 했다.
요즘 공천 거래 의혹으로 구속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전화도 황금폰으로 불린다. 명씨가 대선 기간을 포함해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쓴 전화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주요 정치인들과의 통화 녹음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명씨는 황금폰을 불태웠다고 주장해 왔지만, 보도에 따르면 며칠 전엔 자신의 불구속을 보장해주면 제출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상대방이 공개를 원하지 않았을 기록으로 정치인들을 위협한 데 이어 이젠 구명 로비 수단으로 쓰려는 셈이다. 이 정도면 황금폰으로 부를 게 아니라 ‘농락폰’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검찰만 더 곤혹스럽게 됐다. 진짜 불태웠다면 더 빨리 신병을 확보해 명씨의 증거인멸을 막지 못한 탓을 들어야 하고, 아직 남아 있는데 찾지 못한다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