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이 희생된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극우 인사를 대표로 파견했다. 어제 일본 니카타 현 사도광산 현장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2022년 참의원 당선 직후 2차대전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평소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에 대해 한국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이런 인사를 추도식에 대표로 파견한 것은 조선인 희생자 유가족들을 모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로부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얻어내기 위해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추도식 참석을 보이콧하면서 분노를 터뜨렸으나 일본은 한국측의 불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사를 강행했다.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일본 정부의 어이없는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16세기부터 금광이 채굴된 사도광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노동자 1500여명이 끌려간 곳이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이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일본은 조선인 강제 노역 전시물 설치 등을 약속하고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막상 유네스코가 지난 7월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자 일본 정부의 태도는 달라졌다.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라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환영하는 입장문을 냈지만 조선인 강제노역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것에 양해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사도광산 협상의 전말을 밝혀야 한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어설프게 합의해준 것이라면 외교참사다. 정부는 오늘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한국 유가족들과 별도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지만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조선인 강제 노역을 분명히 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일본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세계유산위원회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북한 핵 대응 방안 등을 놓고 한국 정부와 공조하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솔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전임 기시다 총리 시절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 등으로 이뤄낸 양국 관계 개선의 성과를 이어나갈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