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보수의 겨울

입력 2024-11-25 00:37

보수의 겨울은 더 길어질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법리스크의 시간을 맞이했지만 여권은 지지율 침체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사이익만으론 민심을 되찾아오지 못한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진단은 여권이 당면한 현실이 되고 있다.

사실 명확히 평가하자면 국민의힘은 야권 리스크가 커지는 동안 반사이익을 얻기는커녕 고꾸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난 10월 한 달간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30~32% 수준 동률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런데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기점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에 데드크로스된다. 담화 다음 날 나온 조사에서 여당은 29%로 3% 포인트 빠졌고, 민주당은 36%로 4% 포인트 올랐다. 양당 지지율 격차 7% 포인트는 11월 둘째 주(각 27%, 34%)에도 유지됐다. 지난주(각 28%, 34%)까지 추세 변화는 없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내림세만 가까스로 멈췄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에 대한 중형 선고 직후 여권 인사들이 모인 대화방 여러 곳에 환호의 이모티콘이 쏟아졌다고 답답해하던 한 국민의힘 인사의 한탄이 떠올랐다. 이 대표의 두 번째 사법리스크를 앞두고 한 대표가 여권 위기론을 거론하며 다시 변화와 쇄신을 말하기 시작한 건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부산 금정에서 길을 찾은 듯 보였다. 당대표가 된 뒤 처음 김건희 여사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10·16 보궐선거를 앞둔 금정이었다. 한 대표는 여사 활동 중단 요구에 공감을 표하는 방식으로 포문을 열었고, 이튿날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조처하라고 검찰을 채근했다. 선거 직전엔 좀 더 구체적으로 ‘용산 인적 쇄신’, ‘한남동 라인 정리’를 꺼내들었다. 국민의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자체 여론조사에서 전통적 여권 우세 지역인 금정의 구청장 보궐선거 판세는 한때 양당 후보 격차가 3% 포인트까지 좁혀지는 위태로운 상태였다고 한다.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사 때문에 여당을 못 찍겠다는 여론이 만연했다고 한 대표 측은 설명했다. 용산을 향한 공개적 쇄신 압박은 그래서 나왔고, 22% 포인트 차 승리로 이어졌다는 게 한 대표의 해석이다.

한 대표는 이후 얼마간은 금정에서 찾은 길을 따르는 듯했다. 김 여사 문제 해법을 3대 요구 사항, 5대 요구 사항 식으로 ‘빌드업’ 했다. 그리고 경과야 어찌됐든 대통령의 사과 담화가 나왔고, 국민의힘은 친윤(친윤석열)계 반대를 누그러뜨리며 특별감찰관 추진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대신 한 대표는 여사 이름을 속으로 삼켰는데, 그 사이 여당 지지율이 민주당에 뒤처진 것이다. 한 대표 입에서 변화와 쇄신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건 금정에서 찾은 길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산 앞에서 끊긴 길이 이어질지 의구심이 가득하다. 여사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던 지난달과는 달리 구체적인 방향성이 없어 쇄신의 의미가 겉도는 느낌이라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여권에서 진행되는 김 여사 문제 해법은 친윤계가 바라던 대로 ‘조용한 페이드아웃’ 형태가 되고 있다. 당의 시선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에 더 쏠리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지지부진은 오랜 증상처럼 취급받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가 진단조차 어려운 희소 질환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심이 두렵다. (여권의) 여러 일들이 참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라를 생각해서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 잘 안다”고 했던 게 재보궐 선거 직후 나온 한 대표의 소회였다. 적어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보수를 위한 치료제가 아니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