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케인스냐 프리드먼이냐

입력 2024-11-25 00:38

총체적 난국의 한국 경제
두 경제학자 장단점 뒤섞은
접근법 시도해보면 어떨까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더라도 한국 경제 상황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내수부터가 문제다. 올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 줄며 10분기 연속 감소했다. 상품 시장은 장기간 ‘빙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부동산은 또 어떤가. 서울에서 10억원 이하 아파트 구매는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불과 10년 전 ‘빚내서 집 사라’고 할 정도의 불황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물가도 매한가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7로 2020년과 비교해 14.7% 올랐다. 점심 한 끼에 최소 1만원은 기본이 됐다. 3000을 넘나들던 코스피지수는 2500 안팎으로 떨어지며 주식에 물린 개미들의 돈을 동결했다. 대출액이 많을수록 한숨은 더 커진다. 하락을 기대했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25%에서 멈춰서 있다. 경제부 8년차 ‘서당개’ 입장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희망적 메시지를 주기 힘들다.

굳이 찾는다면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품목 덕에 13개월 연속 증가한 수출액을 꼽을 수 있겠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쾌재만 부르기 어렵다.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이란 수렁에 빠졌다. 이는 소비침체와 공급망 교란을 부추기며 수출 위주인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향후 4년을 지배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체제는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강화를 예고했다. 관세 장벽을 없앤 덕분에 수출로 약진한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다.

총체적 난국은 방 한 켠에 꽂혀 있던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란 책을 꺼내들게 만들었다. 한 줌의 아이디어라도 얻자고 펼친 책 속에서 희대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등장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시대를 겪은 그는 ‘경제 고전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저축하면 투자로 연결된다’ ‘임금과 물가가 연동된다’는 고전주의적 얘기를 멍청한 소리로 일축했다.

그는 쉽게 말해 소비를 늘리는 게 불황 탈출의 답이라고 말한다. 가계소득의 소비 비중인 ‘한계소비성향’을 정확히 파악한 뒤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치유하라는 것이다. 수단으로는 재정과 감세를 꼽았다. 경제성장률이 뚝뚝 떨어지는 한국 입장에선 곱씹어 볼 만하다. 하지만 정부의 체력은 재정여력 감소와 세수 부족으로 감세가 쉽지 않은 상황상 탈진 상태로 읽힌다. 이를 실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케인스만으로 부족한 상황은 밀턴 프리드먼도 소환하게 만든다. 그는 ‘정부는 대개 형편없는 운전사’라고 인식하는 통화주의자들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프리드먼은 생전 미 연방준비제도에 ‘활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고금리를 유지 중인 한은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다만 이 역시 가계부채 등 현안을 우려하는 한은이 손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상황이지만 최소한 두 학자의 장단점은 경제정책 당국엔 단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브리드적인 접근법을 시도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언이다. 미 연준 이사회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학자들에게 ‘케인스의 머리를 떼어다 프리드먼 몸에 붙이려는’ 시도를 강조한 바 있다. 지근거리에서 경제정책을 보는 입장에서 과연 한국의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시도를 해봤는가는 의문이다. 두 고인의 제언을 함께 놓고 고민한다면 최소한 경제학 전공이 아닌 필자보다는 나은 해법을 내놓지 않을까.

이와 함께 고전 속 인물이 내놓은 또 하나의 제언도 들어봤으면 한다. 미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경제학을 모르는 법조인들은 사회를 위협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현재 한국 정치를 주름잡고 있는 이들은 법조인 출신이 다수다. 1세기 전을 살았던 선배의 고언이 그들의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