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95세 할머니도 웃음꽃… 프랑스식 구슬치기 ‘페탕크’ 즐겨요

입력 2024-11-25 03:21 수정 2024-11-25 03:21
강남노인복지관 페탕크 클럽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페탕크 게임을 즐기고 있다. 페탕크는 과도한 신체접촉이나 움직임이 필요치 않으면서도 2경기를 하면 1만보 정도 걷는 효과가 있어서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실버스포츠로 주목받고 있다. 권현구 기자

손을 떠난 묵직한 쇠공이 목표구 앞에 정확히 떨어지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유래된 ‘페탕크’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페탕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생소한 종목이지만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실버 스포츠 중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다.

페탕크 클럽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정기 운동에 나섰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쌀쌀한 날씨였지만 스무 명 안팎의 회원들이 모였다. 페탕크는 5년 전쯤 퇴직한 불어 교사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곳 클럽에선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노년층 회원들이 매주 운동을 하고 있다.

최고령 회원은 이날 가장 먼저 운동장에 도착해 운동을 준비한 95세 고순금 할머니다. 클럽에선 ‘왕언니’로 불린다. 고 할머니는 3년째 페탕크를 즐기고 있다. 평생 운동을 모르고 살았지만 페탕크 클럽에 가입한 뒤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고 할머니의 정교한 투구에 회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고 할머니는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더니 팀원들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고 할머니는 “목표구 가까이에 공을 잘 붙일 때가 기분이 좋다. 오히려 과감히 던져야 경기가 잘 풀린다”며 “다른 회원들과 교류하는 것도 노년기의 큰 행복 중 하나”라고 말했다.

페탕크는 지름 50㎝의 플라스틱 원형 서클 위에서 무게 650~800g의 쇠공(불·boule)을 6~10m 사이 거리에 떨어진 목표구(뷧·but)를 향해 던지는 경기다. 목표구에 더 가까이 공을 붙인 팀이 점수를 따낸다. 라운드 방식으로 진행되며, 총 13점을 먼저 얻는 팀이 승리한다. 한 경기당 평균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경기 규정상 상대 투구를 방해하지 않도록 수시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두 경기를 하면 통상 8000~1만보를 걷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김종철 한국불스포츠협회 회장은 “페탕크는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전략게임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나이가 많아도 불리하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체 접촉이나 격한 움직임을 요구하지 않아 비교적 부상 위험이 적은 것도 페탕크의 장점이다. 팀 경기에선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전략을 짜야 해서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매력 중 하나다.

페탕크는 인원수에 따라 팀을 나눠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3대 3 경기에선 1인당 공 2개씩을 던져 승부를 낸다. 목표구에 공을 붙이는 포인터, 상대의 공을 쳐내는 슈터, 경기 상황에 맞춰 포인터와 슈터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미들-맨 등으로 포지션이 나뉜다. 정확한 투구가 필요한 포인터는 역회전을 걸어 잘 멈출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는 무거운 공을, 슈터는 잘 굴러갈 수 있는 가벼운 공을 주로 쓴다. 2대 2나 1대 1 경기에선 1인당 3개씩의 공을 던진다.

클럽 주장을 맡은 장영자(81)씨는 주변인들에게 페탕크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곤 한다. 다른 구기 종목도 경험해봤지만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운동은 페탕크였다. 장씨는 “페탕크는 너무 힘들지도 않고, 좁은 공간에서 땅에 줄만 긋고도 편하게 즐길 수가 있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금전적 부담도 없다”며 “운동하는 날이 늘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