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 대기, 열 주고받으며 영향
韓 대륙과 대양 경계… 여름철 내내
북태평양·티베트고기압에 포위돼
12월 춥고 1월 평년보다 따뜻할 듯
韓 대륙과 대양 경계… 여름철 내내
북태평양·티베트고기압에 포위돼
12월 춥고 1월 평년보다 따뜻할 듯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계 기후 관련 기관들은 2024년 기후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16개월 연속으로 따뜻한 달이 이어진 가운데 올해는 산업화 이후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12만여 년 전인 간빙기 이래 가장 높다는 의미다. 이를 실감케 하는 증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 많은 지역에서 발생한 여름철 폭염이다. 해양을 기후변화 조절자라고 부르듯이 이 불편한 극한 기상 뒤에도 해양이 있다.
지난 추석 전 날씨 뉴스다. ‘기상청은 한반도 위 대기 상층엔 티베트고기압, 중하층엔 북태평양고기압이 버티고 있으면서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것이나 남쪽에서 태풍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상황이 연휴에도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여름 날씨의 시나리오로 간주한다면 폭염, 열대야, 태풍은 주연이고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은 든든한 조연이다. 여기에서 기후변화 조절자 해양은 기획연출 역할을 한다.
해양의 기획 의도를 대기에 표현하는 과정을 ‘해양-대기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한다. 해양과 대기가 열, 물, 이산화탄소 등을 주고받으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들에서 날씨와 기후변화가 바로 연상된다. 작게는 증발과 강수, 바람과 파도에서 크게는 해양 순환과 대기 순환 사이의 변화까지 모두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열과 물은 해양에서 대기로 공급된다. 해양이 지구의 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단위 열용량도 대기보다 4배 커서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하기 때문이다. 해양은 지구상 물의 97%를 보유하고 지구 표면 총 증발의 86%와 총 강수의 78%가 해양에서 일어난다.
지구의 물 중 해양이 차지하는 비중
▶ 총 물의 양의 97%
▶ 지구 표면 증발의 86%
▶ 총 강수의 78%
▶ 총 물의 양의 97%
▶ 지구 표면 증발의 86%
▶ 총 강수의 78%
해수면에서 증발은 대기 습도와 강수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도 기후계의 열 분배에 매우 중요하다. 열은 해양과 대기 사이에서 직접 교환되기도 하지만 증발 수증기를 통해서도 이동되기 때문이다. 대기의 열 변화는 운동 발생으로 이어진다. 해양에서 공급된 열은 공기의 상승을 유도하고, 상승한 공기는 차가워지면 다시 하강해 상승 지점으로 이동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해양을 연료통으로 하는 하나의 열기관이 발생하는 셈이다. 가장 강력한 열기관은 태풍이고, 가장 거대한 경우는 태평양 동쪽과 서쪽 적도해역의 해수면 온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엘니뇨-남방진동이다. 또 다른 거대 열기관은 적도와 고위도 해역의 남북 방향 해수면 온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대기 순환이다. 이 순환이 북태평양고기압 형성의 원인이 된다.
적도 부근에서는 강한 증발에 따라 열을 받고 가벼워진 공기가 상승하게 된다. 상승 기류는 상층에서 극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열을 잃고 무거워진다. 위도 30도 부근에 이르면 이 기류는 하강하고 다시 지표면을 따라 적도 쪽으로 이동한다. 해들리 순환이라고 부르는 대기 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하강 기류는 대기압을 증가시켜 아열대고기압이 형성되는데 이 중 하나가 북태평양고기압이다. 하강 기류는 매우 건조해 이 고기압 해역은 증발량이 강수량보다 많다. 각 대양에서 해수면 염분이 가장 높은 해역인 이유다. 육지에서는 위도 30도 부근에 사막이 분포하는 원인이 된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여름철에 강해지며 서쪽으로 확장해 동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끊임없는 해양-대기 상호작용의 결과다.
티베트고기압은 평균 고도가 4000m 이상인 티베트 고원에서 만들어진다. 겨울이 지나 눈이 녹음에 따라 지표면이 가열되면서 상승 기류가 형성되고 고원 주위와 온도 차에 의해 더운 고기압이 형성된다. 이 고기압은 티베트 고원에 겨울철에 눈이 적게 오거나 눈이 빨리 녹을수록 크게 발달한다. 즉, 티베트 고원 적설량과 눈 녹음 시기가 고기압 형성과 강도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여름이 얼마나 더울 것인지는 티베트 고원에 눈이 얼마나 오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티베트고기압은 남아시아 몬순 발생에도 역할이 있어 아시아 전역의 물순환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고기압에 유도된 바람이 인도양에서 수증기를 아시아 대륙으로 공급해 강수량을 증가시킨다. 티베트고기압이 동쪽으로 확장되면 동아시아 지역 장마 특성 변화와 기온 상승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티베트고기압의 형성과 확장도 배경을 추적하면 큰 규모의 해양-대기 상호작용과 연결된다. 티베트 고원에 내리는 눈은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공급된 수증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대양의 경계로 대륙성 고기압과 해양성 고기압의 경계 지역이다. 지난 여름철 내내 이 지역 상공 상층과 중하층은 각각 동쪽으로 확장한 티베트고기압과 서쪽으로 확장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장악해 태풍 길목을 막고 폭염과 열대야 일수의 기록을 세웠다. 이른바 역대급 더위였다. 해양-대기 상호작용이라는 기획에 의한 두 고기압의 조연 역할에 따라 주연의 연기가 결정된 것이다. 한편, 북서태평양에서 우리나라 주변 바다까지 연결돼 나타난 강한 해수면 고수온 현상은 또 다른 해양-대기 상호작용 기획에 해당한다. 열대야를 지속시킨 높은 습기가 계속 공급될 수 있었던 배경이어서다.
지난 10월 발표된 기상청의 3개월 기상 전망은 “오는 12월은 라니냐와 북극해 해빙 감소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동쪽에 저기압성 순환이 강화돼 북풍류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낮고, 1월은 인도양과 대서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로 인해 우리나라 부근에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돼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제 날씨의 주연이 추위와 눈으로 바뀌었으나 조연은 기압 배치이고 기획연출은 여전히 해양 담당이다. 남극해를 제외한 모든 대양이 언급되고 있다. 여러 형태의 해양-대기 상호작용이 기상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해양은 겨울 날씨를 조절한 계획을 이미 다 세워 놓았을 터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