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 경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법 개정

입력 2024-11-25 00:35

우리 경제 구조적 위기 전환점
한국 증시 연평균 수익률 꼴찌

쪼개기 상장과 엉터리 합병
모두 ‘합법’적으로 자행돼

일반 주주에 대한 약탈 막고
재산권 보호 실제로 작동해야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어떤 경우에 성공하는가? 다르게 표현하면 경제 성장은 어떤 경우에 성공하는가? 이 질문은 경제학의 최대 화두다.

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명예혁명이었다. 영국 정치사에서 의회주의가 확립되는 중요한 분기점은 청교도혁명(1642~1651)과 명예혁명(1688년)이다. 두 사건은 모두 귀족들이 왕의 과도한 세금 부과에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명예혁명의 결과 1689년 권리장전이 채택된다. 핵심 내용은 의회 동의 없이는 법률을 만들 수 없고, 세금을 부과할 수도 없다.

그런데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명예혁명의 경제학적 귀결은 ‘재산권 보호’였다. 즉 ‘약탈 방지’였다. 재산권 보호가 작동하자 이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국채 발행 이자율이 낮아진다. 15% 정도 하던 이자율이 3%까지 낮아진다. 은행의 당좌예금도 약 20배 이상 급증했다. 특허 제도가 발달하고, 모험적인 투자도 발달하게 된다. 내 재산이 약탈당하지 않는다는 신뢰, 즉 ‘재산권 보호’는 경제 성장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제도다.

현재 한국 경제는 구조적 위기의 전환점에 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모두 좋지 않다. 환율은 달러당 1400원을 넘었고, 코스피지수는 2500선이 무너졌고, 삼성은 ‘4만전자’로 급락했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국제 무역 확장과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봤던 나라다. 이제는 모두 반대방향으로 작동하게 됐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는 다른 요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다. JP모건 자료에 의하면 2013~2022년 글로벌 주요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에서 한국은 꼴찌다. 미국 12.6%, 대만 10.3%, 인도 7.6%, 일본 5.9%, 중국 5.5%, 유럽 5.2%다. 유독 한국만 1.9%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잃어버린 30년의 일본보다 낮고, 저성장으로 고통받는 유럽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증시는 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늪에 빠져 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주에 대한 약탈’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이를 막기 위한 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산권 보호’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일반 주주에 대한 재산권 약탈 사례는 너무 흔하다. 쪼개기 상장과 엉터리 비율을 통한 기업 간 합병이 대표적이다. 쪼개기 상장의 사례는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본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 분할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1년 1월 최고 100만원을 찍었던 LG화학 주가는 현재 29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애초 LG화학 주주들은 자사의 배터리 사업본부의 성장 가능성까지를 고려하고 투자했다. 즉 LG화학 주가에는 ‘배터리 사업본부의 성장가치’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알짜 사업본부를 쪼개기 상장을 했다.

당시 LG화학 지분을 보면 LG그룹 총수의 우호적 지분은 약 30%,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의 지분은 약 70%였다. LG화학 70% 주주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멘붕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재산권이 침해당하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은 ‘합법’이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이 여전히 이슈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로보틱스는 ㈜두산의 자회사다. 둘 다 실질적으로는 두산그룹 총수 가문의 지배를 받는다. 2023년 기준 매출액을 비교하면 두산밥캣은 9조7589억원이고 두산로보틱스는 530억원이다. 무려 184배 규모로 두산밥캣이 크다. 두산로보틱스는 5년 연속 적자이고, 2023년에 처음 상장돼 아직은 ‘테마주’ 수준으로 불안정한 기업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비율은 비정상이다. 매출액 530억원 회사는 1로 평가하고, 매출액 10조원 회사는 0.63으로 평가했다. 이 모든 행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근거한 ‘합법’이다.

오죽하면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겠는가. 자본시장 정상화가 한국 경제 위기 극복의 첫 걸음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현행 상법은 ‘회사 이익’만 보호하면 된다. ‘회사와 총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이 필요하다. 일반 주주에 대한 약탈을 막고, 재산권 보호가 실제로 작동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