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갈수록 커지는 핵전쟁 위험

입력 2024-11-25 00:33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육군전술미사일시스템(ATACMS, 에이태큼스)으로 러시아를 타격할 수 있게 허용했다. 사거리 300㎞로 러시아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금지된 대인지뢰 사용까지 승인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에이태큼스 6발로 러시아 브랸스크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곧 이어 영국이 제공한 스톰섀도 순항미사일도 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 결정이 ‘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고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격화되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논의되던 핵전쟁 위험이 한 걸음 더 현실로 다가왔다. 본토 타격에 러시아는 새로운 중거리미사일(IRBM) 발사로 대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미사일이 ‘오레시니크’라고 소개하면서 마하10 이상의 극초음속이라 미국을 포함, 세계 어떤 미사일 방어체계도 요격할 수 없다고 밝혔다. CNN은 이번 미사일이 탄두 여러 개를 실어 각기 다른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다탄두 개별유도 미사일(MIRV)이라고 보도했다.

핵탄두를 적재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함으로써 푸틴은 세계를 상대로 핵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한 셈이다. 전쟁이 확전의 수렁에 빠져 더 궁지에 몰리게 되면 푸틴의 위협을 그저 공갈로만 받아들이기엔 위험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러시아는 작년 11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철회한 데 이어 ‘핵 교리’까지 개정했다.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이를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또 러시아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 정보를 입수하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최근 추세를 겨냥해 ‘제3차 핵시대(third nuclear age)’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제1 핵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수만 개 핵탄두를 보유한 채 서로 맞선 공포의 시기였다. 냉전 종식 후의 제2 핵시대에 전 세계의 핵무기 비축량은 크게 줄었지만 인도 파키스탄 북한 같은 새로운 도전 요인을 안게 됐다. 지금 목격하는 제3 핵시대는 새로운 냉전과 비슷하지만 더욱 혼란스럽고 잠재적인 적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핵무기는 더 많아지고 보유국은 늘고, 핵무기 비축량에 제한도 없어지고 핵 사용 위협에도 거리낌이 없는 시대다.

내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런 핵전쟁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을까?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군비통제 조약 뉴스타트(New START)는 2026년 2월 종료된다. 미·러가 후속 조약에 합의하지 못하면 세계는 다시 강대국 핵군비 경쟁 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현재 500개 정도인 중국 핵탄두는 2035년엔 1500개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핵 비확산보다는 중국 견제와 미국 국익 방어에 더 관심이 크다. 군비통제를 경시하고 ‘핵 버튼’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트럼프는 핵무력 증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핵 비확산 문턱이 낮아질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 한국 내 독자 핵무장 지지 여론이 크게 자극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이 독자 핵무장 길을 선택하면 이는 세계적인 핵 확산 판도라 상자를 여는 신호탄이고, 동북아 핵 도미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역량 강화에 올인하면서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제전으로 비화시켰다. 이처럼 세계 도처에서 제3의 핵시대가 과거와 달리 크게 위험스러울 수 있다는 징후가 넘쳐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부터 한반도까지 점점 짙어지는 핵전쟁의 그림자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세계의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핵 비확산체제 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혜가 더욱 필요한 때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