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형사 사건에 회사가 변호사 비용을 댔다는 의혹에 대한 조세심판원의 판단이 5년 7개월째 공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효성 측은 287억원으로 추정되는 조현준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사건 변호사비가 개인 지출이 아닌 법인의 정상적인 활동 비용이라며 2019년 4월 조세심판청구를 했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효성은 국세청이 고(故)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 회장 관련 사건에 지출된 변호사비를 개인의 부당 소득으로 보고 과세한 점이 부당하다며 조세심판을 청구했다. 효성은 해당 변호사비가 사업 활동을 하며 발생한 필요 경비를 의미하는 ‘법인 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경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내역에 따르면 2013년 이후 효성이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 관련 사건 변호사비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408억원가량이다. 2013년 1300억원대 탈세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때 121억원이 지출됐다. 나머지는 동생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조 회장을 고발한 200억원대 횡령·배임 건과 관련해 2017년 전후 검찰 수사가 개시된 이후 지출됐다. 효성의 6개 계열사에서도 십시일반으로 변호사비용을 댔다.
조세심판원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해당 심판청구가 인용되면 조 회장이 앞서 국세청에 추징된 소득세와 가산세를 국가에서 되돌려받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각될 경우에는 변호사비 일체를 개인의 부당 소득으로 인정해 추징한 소득세와 가산세가 국고에 전액 귀속된다.
차일피일 심판을 미루던 조세심판원은 최근 1300억원대 탈세 혐의 건의 변호사비 121억원가량은 법인 손금이 맞는다며 효성 측 손을 들어줬다. 탈세 주체가 회사라는 점에서 이를 법인 활동 비용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변호사비 287억원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효성 측은 일단 변호사비 287억원을 지출했다는 점부터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효성 관계자는 “실제 비용은 287억원보다 적고 조 회장 개인이 지불한 것도 있다”면서도 “정확한 비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결정이 미뤄지는 이유는 관련 사건이 최종 판결 전인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의 200억원대 횡령·배임 사건은 2020년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이 나온 뒤 대법원이 4년째 심리를 진행 중이다. 전직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형사 사건으로 법정 공방이 있는 심판 건의 경우 법원의 최종 판단을 지켜본 뒤 결론을 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효성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점을 주목하고 있다. 현행법상 조세심판청구 후 90일이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청구인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추징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지만 효성은 이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 다른 전직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조세심판원 수준에서 해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양민철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