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특별사절단의 한국 방문이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둔 ‘단계적 대응’을 공언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은 확전을 경계하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정보당국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선에 투입돼 교전한 정황까지 파악했지만, 정부는 신중 대응 기조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해제하는 등 우크라이나 지원 강도를 높이고 있어 우크라이나가 우리 측에도 무기 지원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 신(新)정부와의 외교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시기라 전략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포함된 ‘실효적·단계적 대응 조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기준은 북한군 전투 개시”라며 참전을 ‘레드라인’으로 시사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발언도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든 형태의 방공망, 드론 및 전자전 방어 기술을 우리 측에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와의 전투에 투입됐다는 정황을 정보당국이 파악한 이후에도 정부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단계적 조치 방침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면서도 “무기 지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 살상무기라는 군사용어는 없다”며 “무기 지원을 하게 된다면 불법 침략에 따른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용 무기를 먼저 검토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부연했다. 정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로 참관단을 파견하는 문제에도 “우크라이나 특사가 한국에 오면 그때 관련 논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루스템 우메로우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이르면 다음 주 한국에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반도 정세에 민감할 수 있는 외교·안보 전략을 섣불리 공언하며 스스로 딜레마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24시간 내 종전’ 입장을 여러 차례 언급해 왔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한을 풀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마이크 왈츠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폭스뉴스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무기 제한 해제로 대응하고, 북한은 더 많은 군인을 보내고, 한국은 전쟁에 관여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며 확전을 경계하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트럼프라는 미래 권력이 우리로서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당장은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을 맞춰주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정부로서는 무기 지원을 밀어붙이는 것보다 국익에 어떤 방식이 더 도움이 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종전하겠다고 선포를 한 상황에서 우리가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무기 지원을 독단적으로 할 수는 없다”며 “트럼프가 종전을 위해 러시아에 먼저 요구할 것 중 하나가 북한군 철수일 텐데, 직전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결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이택현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