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2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반도체특별법 심의에 착수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을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로 규정하고, 반도체 기업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뒀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발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고,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경기도의 민주당 소속 김동연 지사가 입법을 적극 촉구하는 등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축에 든다. 그럼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주 52시간제의 균열을 우려하는 노동계 시선 때문이다. 노동계를 의식한 민주당이 주 52시간제에 예외를 두는 것을 꺼려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경쟁 여건은 그렇게 한가롭지 않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입지를 지키려면 민주당의 적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지원 특별법(칩스법)을 통해 산업 지형을 재편했다. 천문학적 보조금과 강압적인 규제로 각국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를 유도했다. 한국 기업도 그 생태계에 적응해왔는데, 정권이 바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칩스법을 비판해온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반도체 산업에 또 한 차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더욱이 인공지능(AI) 반도체로 시장 구도가 급속히 재편되는 터라 아직 이 분야의 경쟁력을 다지지 못한 국내 기업은 한층 어려운 상황이고, 최근 삼성전자의 부진이 말해주듯 그 위기는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 같은 경쟁을 벌이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근무시간’은 족쇄로 작용해왔다. 미국 일본 대만 등 경쟁국은 모두 노동시간 예외 규정을 둬서 연구개발을 촉진하는데, 우리 규제는 너무 경직돼 있어 국내 기업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장한다. 초과근무에 인센티브를 주는 기업과 주 52시간을 맞추느라 강제로 퇴근시키는 기업이 경쟁한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국가적 먹거리를 지키려면 획일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규제의 유연성을 찾아야 한다. 한국 산업의 중추인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이 전환기에 가장 중요한 민생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