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적정 걸음 수로 보통 1만보를 떠올리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하루 1만보는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자 이듬해 일본의 한 시계업체가 만든 만보계에서 비롯됐다. 일만 만(萬)의 약자인 만(万) 자가 사람이 걷는 모습과 비슷해 하루 만보를 걸으면 건강해진다고 홍보했는데, 이 마케팅 전략이 세계적으로 퍼진 것이다. 이후 정말 하루 1만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걸음 수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지난해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이 주도한 국제연구는 ‘조기 사망 위험을 크게 줄이려면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증거’라며 하루 8000보를 제시했다. 하루에 약 6.4㎞를 걷는 정도다. 유럽 예방 심장학 저널의 논문도 8000보를 적정 걸음으로 봤다. 많이 걸을수록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효율성이 떨어진다. 투자한 시간 대비 최적의 혜택을 원한다면 이미 8000보에서 대부분의 이득을 얻었다는 것이다.
장수인이 많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나왔다. 일본 장수 연구소인 도쿄 도립 건강 장수 의료센터가 20년간 65세 이상 5000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하루 8000보를 걷고 그중 20분을 빠르게 걸으면 거의 모든 질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이를 실천한 사람 10명 중 9명은 아프지 않았다. 연구팀은 ‘8000보, 속보 20분’을 걷기 황금비율이라고 했다. 속보의 기준은 성큼성큼 걷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빨리 걷기, 살짝 땀이 나게 걷기 등이다.
노화 예방을 30년간 연구한 일본 의사 이가세 미치야는 ‘1분 한 발 서기’를 제안했다. 똑바로 서서 한쪽 발을 바닥에서 떼고 1분간 유지하기를 하루 세 번 하면 발목뼈에 하루 50분 걷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단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손쉬운 습관인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아직은 걸을만한 계절, 걸음 수를 기록하며 성취감을 느껴보자. 시간이 나서 걷는 게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서 걸어야 한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