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달 열린 전국체육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코치 생활에 돌입했다. 평생을 함께한 양궁장에 들어섰지만 꽤 낯설었다고 한다. 처음엔 선수들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고 스코프를 통해 과녁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색해서 ‘직접 활을 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오진혁은 “활을 잡은 선수들을 바라보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 힘들 때가 있었다”며 “전국체전에 이어 경기 수가 많은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치르면서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지난 9월 전국남녀양궁종합선수권대회가 열린 경북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에서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33년간의 기나긴 선수 생활이 마무리됐다. 어깨 회전근 4개 중 3개가 끊어진 채 통증을 달고 현역 신분을 유지했었던 그는 “남은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다”고 강조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재충전의 시간도 가졌다. 함께 할 여유가 없었던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취미로 골프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양궁과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서 현역 시절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종목이다.
오진혁은 한국 양궁의 올림픽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첫 출전한 2012 런던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남자양궁 사상 최초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이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김우진(청주시청), 김제덕(예천군청)과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하며 한국의 2연패를 이끌었다. 당시 결승전 마지막 발을 쏜 직후 그의 입에선 “끝”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화살이 10점 과녁에 꽂혀 우승이 확정됐고, 오래도록 회자될 올림픽 명장면으로 남았다.
오진혁은 “원래 도쿄올림픽 이후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어깨가 좋지 않아 이듬해 장비를 바꿔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는데 운이 좋게도 태극마크를 달았다”며 “아시안게임에 나갈 마지막 기회를 잡았는데 대회가 1년 미뤄졌다. 그때는 약간 허탈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준비했다”고 말했다. 단체전 금메달을 딴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은 그의 마지막 국제대회가 됐다.
올림픽 금메달을 얻기보다 어렵다는 한국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은 햇수로 꼬박 20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8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그는 주요 국제대회를 앞두고 여러 번 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태극마크의 존재는 양궁 선수 오진혁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국가대표는 나를 좀 더 바로잡아줄 수 있는, 인내하게 해주는 자리였다. 태극마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탈을 억눌렀고, 1년 365일 중 단 이틀만 쉬고 활을 쏘기도 했다. 대표팀 재승선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이 결국 긴 선수 생활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랜 선수 경험이 지도자 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오진혁은 “선수 생활을 길게 했다. 선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그들의 입장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것 같다”며 “잘 아는 만큼 선수들에게 좀 더 잘해줄 수 있는 코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오진혁은 양궁부가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오며가며 양궁부 선배들을 마주치긴 했지만 양궁에 큰 관심은 없었다고 한다. 우연히 교무실에 들렀다가 창가에 세워진 활을 본 뒤 마음이 흔들렸다. 멋져 보이는 활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클럽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쓰던 활은 정말 안 좋은 장비였다. 그런데도 활을 만지는 게 너무 좋았고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클럽 활동을 하다 자연스럽게 전문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활 쏘는 재미를 느꼈고, 양궁장으로 향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은퇴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생애 첫 시합’이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금메달의 영광을 선사한 런던올림픽이나 도쿄올림픽보다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진혁은 “5학년 말에 공주여중에서 열린 도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딴 뒤 양궁에 집착하게 됐다. 사실 그 메달만 아니었어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엄청난 긴장과 설렘 속에 지도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활을 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경기장의 모습과 경기 장면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며 웃어 보였다.
당장은 첫걸음을 뗀 지도자 생활에 집중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그는 “선수 지도가 처음이다 보니 배울 게 참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랜 국가대표 경험을 바탕으로 체육 행정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오진혁은 “수많은 종목, 다양한 연령대의 국가대표들과 부딪치며 살아왔다. 지금은 방법을 잘 모르겠지만 맡겨만 주신다면 언제든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가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강으로 군림 중인 한국 양궁이 정상을 유지하길 기대했다. 한국 양궁은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로 전 종목 석권에 성공하며 위상을 지켜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쟁국 선수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오진혁은 “후배 선수들이 지금까진 너무나도 잘 해주고 있다. 다만 한국의 훈련과 지도 방식을 참고한 외국 선수들이 쫓아오고 있는 상황이라 현재에 안주해선 안 된다”며 “실력을 한 발짝 더 벌릴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신경을 쓰고, 각자가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성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