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아주 근사한 제주 미식회가 열렸다. 아트와 미식의 조우를 콘셉트로 벌써 3년째 꾸준히 진행되어 온 갤러리로얄의 아트 정찬은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제때 가장 맛있게 먹는 방식을 선보인다. 수준 높은 작가들의 ‘작품’에 담긴 음식으로 차려진 식탁 자체가 예술이다.
미식회를 위해 여러 번 제주를 방문하고 생산자를 찾아다녔고 그중 얼마쯤은 동행하기도 했던 터라 갤러리 측의 진심과 수고를 잘 알고 있었다. 제주의 보물 같은 식재료 창고인 부영농장을 비롯해 무릉외갓집, 제주오일장과 농부장터 등을 샅샅이 훑어 찾아낸 이맘때 식재료들이 정성껏 조리돼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자태를 보니 황홀할 지경이었다.
정찬을 준비한 담당자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충분한 이야기가 담긴 식재료와 조리법을 설명해 주었다. 제주 바다 갈치와 흑돼지, 옥돔, 뿔소라와 돌문어, 양하와 깨송이, 토종 생강과 귤 여기에 약으로 쓰여도 될 만한 된장과 간장 등의 이야기가 식탁 위를 넘실거렸다. 모두 다 좋았는데 그래도 제일 마음 가는 것은 단연 옥돔이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살 오른 이 생선은 제주 사람에겐 ‘생선’ 그 자체다. 제주에서 생선이라 하면 기본적으론 옥돔을 일컫는단 말이다. 옥돔은 제주 바다를 대표하는 보물이자 생일상에도 차례상에도 오르는 당당한 자격을 가졌다. 아주 깊은 바다에 모래 굴을 파고 생활하는 옥돔은 잡기도 힘들어 더 귀했다.
옥처럼 빛나고 예뻐서, 이마가 튀어나와 옥을 닮아 붙은 이름이 옥돔. 제주에선 오토미, 솔내기, 솔라리, 솔라니, 바릇괴기, 옥도미 등 동네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많다. 육지에 살 때 명절이면 아버지 앞으로 옥돔 선물이 꽤 자주 들어왔다. 대부분 배를 갈라 넓게 펴 꾸덕꾸덕 말린 반건조 형태였는데 어머니는 옥돔을 잘 손질해 프라이팬에 올리고 고소한 참기름을 앞뒤로 발라가며 구워 주시곤 했다.
재미난 일은 제주에 내려와선 말린 옥돔을 거의 먹지 않게 된 것이다. 싱싱한 당일바리 옥돔을 툭툭 잘라 가득 채 썬 무와 함께 폭 끓여낸 옥돔뭇국이나 옥돔미역국이야말로 옥돔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지 싶다. 옥돔을 구워 먹는다 치면 빙떡과 함께하는 것도 빼놓을 순 없겠다. 얇게 부친 메밀전에 슴슴하게 간해 볶아낸 무나물을 올려 둘둘 싸 먹는 빙떡은 제주의 클래식한 잔치음식이기도, 간식거리이기도 한데 제주 사람들은 담백한 빙떡에 짭조름한 옥돔구이 한 조각을 곁들이기를 즐겼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단단하게 살 오르는 옥돔을 만나고 싶다면 남원읍 태흥2리로 가면 된다. 제철엔 거의 매일 오후 옥돔 경매가 이루어진다. 동문 시장엔 어머니의 뒤를 이어 50년째 옥돔 간잡이로 소문난 고경현님이 있고 제주시청 앞 한라식당에선 진짜 제주식 옥돔뭇국과 미역국을 맛볼 수 있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