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그 질문은 무례하지 않았다

입력 2024-11-22 00:38

대통령에게 ‘사과’ 의미 물은 게
‘무례’라고 주장한 정무수석

해당 기자 예의 갖춰 질문했고
답변이 두루뭉술해 재차 물은 것

대통령실의 그런 인식과 주장이
오히려 기자와 국민에 대한 무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7일 기자회견.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는 22번째로 마이크를 잡고 질문했다. 다소 길지만 질문 전체를 옮겨보겠다.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꼭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 사과할지 명확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대통령께서는 대국민 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쳐드렸다’, 어떻게 보면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기자회견에서도 일문일답을 통해서 명태균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휴대폰을 바꾸지 못해서라든지 아니면 사람 관계에 대해서 모질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마치 이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까 사과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오해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TV를 통해서 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서 우리에게 사과를 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보충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박 기자는 ‘대통령께서’라고 했다. 호칭에 ‘님’을 붙이지 않는 언론계 일각의 문화가 있다. 대신 ‘~께서’라는 표현으로 예를 갖춘다. 이날 질문한 26명의 기자 중 중앙일보 허진, 영남일보 정재훈 , 채널A 조영민, OBS 김용재 기자 등도 ‘대통령께서’라고 했다. 박 기자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국민들께서 좀 오해하시는 부분, 그러니까 이게 팩트를 명확하게 설명을 해야 되는 것과 또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가지고 그러면 이 부분은 잘못한 거 아니냐라고 해주시면 제가 거기에 대해서 사과를 드릴 거고… (중략) 어떤 점에서 딱 집어서 한다면은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사과를 드리죠.”

바로 이어서 경향신문 박순봉 기자가 질문했다.

“(전략) 아까 일단은 사과를 하셨잖아요. 그래서 대통령께서 그러면 인정하실 수 있는 부분, 정확하게 사과를 할 수 있다라고 하는 부분은 어떤 건지 좀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윤 대통령은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좀 어렵지 않습니까?”라며 비슷한 취지로 답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는 것은 정치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문제는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지난 19일 국회 운영위원회 발언이다. 그는 대통령 기자회견 답변에 구체적인 사과 내용이 들어 있었다면서 “그 기자가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사과했는데 마치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하듯 ‘뭘 잘못했는데’ 이런 태도는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이기에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기자 역시 국민을 대신해 권력자에게 질문할 자격을 얻었기에 가감 없이 묻는 것이 오히려 예의다. 그래야 대통령도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지지를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2년이 되던 2019년 5월 KBS 송현정 기자와 90분간 생방송 대담을 한 적이 있었다. 송 기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제1야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가 주도해서 여당이 끌어가는 것으로 해서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는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독재자,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순간 문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담 뒤 지지자들이 거세게 비난했다. 그래도 당시 청와대가 기자나 KBS를 향해 부정적으로 코멘트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2시간30분 동안 26명의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답한 진중한 회견이었다. 홍 수석이 기자의 질문을 두고 무례하다거나 시정해야 한다고 코멘트하는 바람에 오히려 취지가 무색해졌다. 기자에게도 대통령에게도 국민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논란이 되자 홍 수석은 21일 대통령실 공지로 “정무수석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산일보 기자분과 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과를 공지하는 모습도 예의가 아니다.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는 게 정석이다. 나중을 위해 기록해둔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