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열매 한 알을 선물로 줄게요

입력 2024-11-22 00:33

내 방에 뚜껑 달린 함이 있다. 장식 없이 그저 밋밋한 소나무 상자다. 뚜껑에 경첩이 두 개 달렸는데, 제법 오래되어 뚜껑을 여닫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그 나무 상자를 사 온 날, 손수 옻칠을 했더랬다. 오전에 한 번 바르고, 오후에 볕이 깊게 들 때쯤 덧바르니 고동색 함이 되었다. 거기에 독자들로부터 받은 편지, 편집자나 친구들과 정답게 나눈 엽서들을 모아두었다. 차곡차곡 추려 보니 백과사전보다 두툼했다. 후덕한 사랑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나날들.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처방전을 살펴보듯,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어쩌면 편지를 준 사람도 까맣게 잊었을지 모를 이 편지들을 다시 펴보게 된 까닭은 따로 있다. 최근 한문학자 최다정이 펴낸 산문집 ‘시가 된 미래에서’에 수록된 국풍(國風) 위풍(衛風)편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모과 한 알을 툭, 선물해주길래/나는 귀한 패옥으로 보답했다/답례하려는 것이 아니다/오래도록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은/마음뿐이다// 나에게 복숭아 한 알을 툭, 선물해주길래/나는 아름다운 옥구슬로 보답했다/답례하려는 것이 아니다/오래도록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은/마음뿐이다// 나에게 자두 한 알을 툭, 선물해주길래/나는 빛나는 옥돌로 보답했다/답례하려는 것이 아니다/오래도록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은/마음뿐이다.”

마음의 형태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크고 밝게 빛나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쉬이 빛이 시들어 버린다. 흠이 많아도 어떤가. 진정한 교류는 보답을 바라거나, 선물을 주며 득을 보려는 마음에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이에게 모과 한 알을 건네고 싶은 향기로운 마음 안에 깃든다. 나이 들수록 단순하고 깨끗하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기 어렵다. 어쩌면 선물을 주고받는 기쁨은, 타인의 선의를 담백하게 받아 안는 사람이 느끼는 게 아닐까. 누군가 잘 여문 마음 한 알을 건넨다면, 크고 시원하게 베어 물자.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