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기를 당한 사람을 보면 날린 돈도 돈이지만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라는 말을 되뇌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고 나면 멍청해서 속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은 사기꾼을 정말로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사기를 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신흥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바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립 대만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대학에서 오랫동안 사기의 본질을 분석하는 ‘사기의 사회학’ 강의를 진행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사기와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저자는 “사기는 아마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있었을 것”이라며 “그건 인류가 악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선 사기의 본질을 알 필요가 있다. 미국 사회학자 알프레드 쉬츠의 ‘다중 현실’ 개념에 저자는 사기 사건을 대입한다. 사기꾼은 사기를 치는 동안 계속 ‘사기 현실’에 사는 반면, 속은 사람은 ‘진짜 현실’에 산다. 속은 사람은 일이 터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자신이 ‘진짜’라고 믿었던 현실에서 속았다는 걸 깨닫는다. 사기꾼과 ‘사기 현실’을 자각할 땐 이미 늦었다. 사기꾼은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사기’ 모드를 채택하지만 속은 사람은 수동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신의성실’ 모드에 놓인 채 소통하게 된다.
거짓말을 판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고문으로 일했던 심리학자 폴 에크먼의 연구에 따르면 훈련받은 전문가라도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완벽하게 알아낼 수 없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는 거짓말은 47%에 불과했다. “어쩌면 주사위나 동전 던지기로 맞힐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기 피해자들에게는 일반적인 특징이 있다. 사회적 교류가 적고, 목표를 향한 열정은 강하지만 그 목표를 이룰 희망은 없고, 똑똑해서 절대 사기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전문가라고 믿는다.
정치에서도 사기는 필요악이다. “속이지 않으면 국민을 설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저자는 정치 사기의 특징을 ‘누락하거나 반쪽 진실만 이야기한다’ ‘왜곡하거나 억지를 쓴다’ ‘상대방에게 불리한 것을 과장한다’ ‘초점을 다른 데로 돌린다’ ‘거짓정보를 만든다’ 등으로 설명했다. ‘댓글 부대’의 여론 조작도 일종의 정치 사기다. 이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사람들의 눈을 흐려 부화뇌동하게 만들면서 거짓말을 반복해 진짜로 둔갑시킨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대중을 혼란시켜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정치에 놀아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는 ‘전략적 거짓말’도 종종 사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소련을 압박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훗날 미국과 소련이 거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국민을 기만한 것이기도 했지만 세계 평화를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저자가 처음 사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명나라 말기 장응유가 쓴 ‘편경(騙經)’을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사기와 관련된 24가지 주제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목적은 사기 근절이었다. 문제는 편경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사기행각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류 사회에서 속임수가 없기를 기대하는 건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면서도 “한낱 사기에 관한 지식에 불과하더라도 그 지식을 통해 사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쉽게 사기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